세계의 역사 2
윌리엄 맥닐 지음, 김우영 옮김 / 이산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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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결하다. 설명이 재치있다. 하지만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안내서는 아니다. 대학교재로 적합하다. 사학을 전공했지만 공부에 게을렀던 터라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딱딱하지 않은 문체, 저자의 역사적 통찰이 담긴 재치 있는 어투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았다. 머리에 붕붕 떴다. 번역과정에서 그 맛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수준 높은 통찰에서 나오는 농담을 이해하기에는 내 내공이 많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지도도 꾸준히 삽입되어 있어 유용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사를 몇 개의 문명으로 묶어 그 문명 간의 접촉과 변용, 경쟁으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세계사를 이해하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고 이 책의 장점인 간결하고 명쾌함이 살아난다. 특히, 스텝지대 문명과 서아시아, 인도, 중국, 유럽의 농경문명이 어떻게 대항했는지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보라. 각 문명의 접촉과 그 대응방식에 따라 각 문명이 어떤 과정을 걷게 되는지 거시적인 안목을 갖도록, 무릎을 탁 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일본문명에 대한 설명은 역시 주변부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중국문명에 대한 서술과 비슷한 양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서술은 거의, 아니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일본과 중국에 대한 서술의 객체에 머무를 뿐이다. 세계사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을 억지로 찾아보고자 노력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집착한다면 '환단고기'를 들먹이며 과대망상적인 역사를 구성하게 될 뿐이다. 굳이 그 비중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세계사란 현재의 영향력을 기준으로 과거를 더듬어갈 뿐이다. 우리는 당시 최첨단이라고 생각했던 중국문명의 영향력 안에서 나름대로의 변용을 거듭했고, 일본은 그 흐름에서 뒤쳐진 조악한 문명이었다. 우리가 '야만'이라고 불렀던 것을 지금 서양인들은 '독특'하다고 부를 뿐이다. 일본문명이 서양의 역사가들에게 이렇게 평가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우리나라와는 달리 위로부터 서구문명을 급속하게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했고,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우리나라의 영향력이 더 컸다면 세계사는 이렇게 씌어졌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중국문명의 변방에서 언제나 나름의 강력하고 특색있는 문명을 구가했던 한국' 그리고 '언제나 문명의 변방에서 투박함과 조야함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일본'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제발 세계사를 읽으며 쓸데없는 비교놀이는 하지 않고자 한다. 앞으로 우리가 세계문명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우리 국민의 행복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만 생각해도 모자른 시간이다. 

   아무튼 흥미로운 책이었다. 독특한 해석도 많았고, 거시적인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참고문헌도 상당해서 저자의 통찰력에 신뢰감을 준다. 참고문헌만 따로 분류해서 추후에 읽어봐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역사공부는 흥미로운 일이다. 세계사를 처음 개관해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지만 그 이후의 과정에서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감히 일독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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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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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함을 조금 덜어냈더라면...열등감을 극복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에 치중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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쩨쩨한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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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이선균의 매력이 듬뿍 느껴지는 동시에...영화도 생각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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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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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주인공의 추리 과정보다도 그 범죄의 피해자를 먼저 떠올리게 되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신출귀몰하고 끔찍한 범죄 수법이 무섭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 평소대로라면 이 책은 나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 책의 광고를 보고 온 동생이 ‘너무 재밌을 것 같다’며 빌려오라고 꼬드겨서 읽게 되었다. ‘난 추리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라는 애초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단 며칠 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흡인력과 속도감이 상당했다. 작가는 성범죄와 금융시장이라는 우리 시대 최대 골칫거리들을 한데 묶어 박진감 넘치는 소설로 만들었다. 불의에 맞선 주인공이 각종 탈법을 서슴지 않는 아웃사이더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하지만 너무 직접적인 범죄의 묘사에 소름이 끼친다. ‘셜록 홈즈’에 나오는 범죄는 이제 애들 장난이 되어버렸다.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감히 ‘재밌다’는 단어를 쓰기가 망설여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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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 Late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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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과 함께 온 듯 한 한 남자는 영화 보는 내내 몸을 뒤척였다.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을 참기 힘든 것 같았다. 개인차가 크겠지만 현빈과 탕웨이라는 배우만 보고 극장으로 달려갔다면 실망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만추는 오랜만에 만나는 ‘느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마냥 느린 것이 아니라, 서정적이지만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 지겨운 줄 몰랐다. 물론 여러 번 리메이크 된 원작의 힘이 크겠지만 말이다. 요즘 영화를 보면 관객의 혼을 빼놓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 우당탕탕 왁자지껄 눈을 돌릴 새가 없게 하거나 피칠갑을 하면서 끽소리 못하게 하기도 한다. 관객을 몰입시킨다는 데에서 그 영화들과 같지만, 만추는 그 방법 면에서 훨씬 ‘양반’이다. 잔잔한 파도 위에 올라탄 느낌이랄까? 아무튼 흡인력있는 영화였다!

  그 흡인력의 상당부분은 탕웨이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탕웨이는 정말 ‘눈’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배우다. 그녀가 연기한 애나라는 인물은 희망을 모두 잃은 인물이라 현실에서 만났다면 많은 사람들이 애나를 피했을 것이다. ‘어머 갑자기 훼까닥해서 나한테까지 해코지하면 어떻게 해!’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탕웨이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애나의 삶 속으로 관객의 시선을 확실히 끌어당기고 있다.

‘나먹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깝다’

  갑자기 ‘싼티’가 확 느껴지는 문장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나먹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깝다’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어렸을 때 오랜만에 별미를 먹게 되면 꼭 그랬다. 배가 무척 부른데도 남겨두면 동생이 다 먹을까봐 몰래 숨겨놓고, 아니면 침 발라놓고…. 더 먹지도 못하면서 남이라도 맛있게 먹게 두면 좋을 것을…꼭 그랬다. 이 때 내 욕심이 상처를 준 것은 동생의 ‘허기’일 뿐이었지만 영화에서 한 사람의 욕심은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 물론 그것이 욕심이 아닐 수도 있고, 파국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도 있지만…나는 그렇게 느꼈다. -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 파국에 대한 값을 내가 모두 ‘독박’쓰게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 점에서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아마 그 부분일 것이다. ‘내 포크를 썼는데 사과를 안하잖아요!’ 바로 이 부분. 다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 하지만 통곡하는 애나(탕웨이)의 마음을 왠지,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두 눈과 두 귀만 있다면 충분하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연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화 또는 공감이 아니었을까. 애나는 중국어로 자신의 과거사를 모두 털어놓지만 정작 훈(현빈)은 중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애나의 말에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 두 단어 - 하오(좋다)와 화이(좋지 않다) - 로 열심히 후렴구를 넣을 뿐 사실은 순전히 애나의 눈과 억양 그리고 말투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추임새가 엉뚱하지만 또 절묘하게 훈의 마음을 잘 전달한다!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면 결국 마음은 통한다는 것일까! 사랑의 시작은 그 곳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 훈과 바람난 옥자의 남편은 훈에게, 도대체 부인이 바람난 이유를 모르겠다며 둘이서 뭐했냐고 묻는다. 훈은 “그냥 얘기했어요.” 라고 답한다. 어떻게 보면 불륜남의 뻔뻔한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모두 다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눈과 쫑긋하게 세운 귀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인가 보다. (아니면 거기에다 현빈의 외모까지 갖추어야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절망적이다.)

그 때가 늦겨울이 아니라 늦가을이더라도!

훈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몇 년 새 애나를 잊었을 수도 있고, 누명을 써서 그 자리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애나는 훈 덕분에 미망에서 벗어났고 마음의 돌을 거둬냈다. 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인생은 절망의 임계점에서 벗어났으리라 본다. 끝으로, 시애틀의 안개, 퇴락한 도심, 음침한 분위기. 그 속을 달리던 오리버스 기사의 말이 다시 맴돈다. ‘해가 또 언제 뜰지 모른다고, 바로 지금 사랑하라고.’ 그 때가 비록 봄을 앞둔 늦겨울이 아니라 겨울을 앞둔 늦가을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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