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 Late Autum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연인과 함께 온 듯 한 한 남자는 영화 보는 내내 몸을 뒤척였다.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을 참기 힘든 것 같았다. 개인차가 크겠지만 현빈과 탕웨이라는 배우만 보고 극장으로 달려갔다면 실망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만추는 오랜만에 만나는 ‘느린’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마냥 느린 것이 아니라, 서정적이지만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 지겨운 줄 몰랐다. 물론 여러 번 리메이크 된 원작의 힘이 크겠지만 말이다. 요즘 영화를 보면 관객의 혼을 빼놓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 우당탕탕 왁자지껄 눈을 돌릴 새가 없게 하거나 피칠갑을 하면서 끽소리 못하게 하기도 한다. 관객을 몰입시킨다는 데에서 그 영화들과 같지만, 만추는 그 방법 면에서 훨씬 ‘양반’이다. 잔잔한 파도 위에 올라탄 느낌이랄까? 아무튼 흡인력있는 영화였다!

  그 흡인력의 상당부분은 탕웨이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탕웨이는 정말 ‘눈’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배우다. 그녀가 연기한 애나라는 인물은 희망을 모두 잃은 인물이라 현실에서 만났다면 많은 사람들이 애나를 피했을 것이다. ‘어머 갑자기 훼까닥해서 나한테까지 해코지하면 어떻게 해!’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탕웨이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애나의 삶 속으로 관객의 시선을 확실히 끌어당기고 있다.

‘나먹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깝다’

  갑자기 ‘싼티’가 확 느껴지는 문장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나먹기는 싫고 남 주기는 아깝다’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어렸을 때 오랜만에 별미를 먹게 되면 꼭 그랬다. 배가 무척 부른데도 남겨두면 동생이 다 먹을까봐 몰래 숨겨놓고, 아니면 침 발라놓고…. 더 먹지도 못하면서 남이라도 맛있게 먹게 두면 좋을 것을…꼭 그랬다. 이 때 내 욕심이 상처를 준 것은 동생의 ‘허기’일 뿐이었지만 영화에서 한 사람의 욕심은 또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 물론 그것이 욕심이 아닐 수도 있고, 파국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도 있지만…나는 그렇게 느꼈다. -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 파국에 대한 값을 내가 모두 ‘독박’쓰게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 점에서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아마 그 부분일 것이다. ‘내 포크를 썼는데 사과를 안하잖아요!’ 바로 이 부분. 다른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 하지만 통곡하는 애나(탕웨이)의 마음을 왠지,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두 눈과 두 귀만 있다면 충분하다

결국 서로의 마음을 연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화 또는 공감이 아니었을까. 애나는 중국어로 자신의 과거사를 모두 털어놓지만 정작 훈(현빈)은 중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애나의 말에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 두 단어 - 하오(좋다)와 화이(좋지 않다) - 로 열심히 후렴구를 넣을 뿐 사실은 순전히 애나의 눈과 억양 그리고 말투만 보고 어림짐작으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추임새가 엉뚱하지만 또 절묘하게 훈의 마음을 잘 전달한다!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면 결국 마음은 통한다는 것일까! 사랑의 시작은 그 곳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 훈과 바람난 옥자의 남편은 훈에게, 도대체 부인이 바람난 이유를 모르겠다며 둘이서 뭐했냐고 묻는다. 훈은 “그냥 얘기했어요.” 라고 답한다. 어떻게 보면 불륜남의 뻔뻔한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모두 다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눈과 쫑긋하게 세운 귀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인가 보다. (아니면 거기에다 현빈의 외모까지 갖추어야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절망적이다.)

그 때가 늦겨울이 아니라 늦가을이더라도!

훈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몇 년 새 애나를 잊었을 수도 있고, 누명을 써서 그 자리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애나는 훈 덕분에 미망에서 벗어났고 마음의 돌을 거둬냈다. 훈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인생은 절망의 임계점에서 벗어났으리라 본다. 끝으로, 시애틀의 안개, 퇴락한 도심, 음침한 분위기. 그 속을 달리던 오리버스 기사의 말이 다시 맴돈다. ‘해가 또 언제 뜰지 모른다고, 바로 지금 사랑하라고.’ 그 때가 비록 봄을 앞둔 늦겨울이 아니라 겨울을 앞둔 늦가을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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