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구판절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중에서-6쪽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강의의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여러분이 제게 ‘울림’을 준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겁니다. 결국 저는 광고하는 사람이니까요. (웃음)-14쪽

땅콩을 거두었다 /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 덜된 놈! 덜 떨어진 놈! (이철수)-22쪽

깊은데 / 마음을 열고 들으면 / 개가 짖어도 / 법문이다 (이철수)-26쪽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최인훈)-32쪽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45쪽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47쪽

봄의 흙은 헐겁다. (…)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다. 봄 풀들의 싹이 땅 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돋아난다. 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속의 길을 예비한다. (김훈)-81쪽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90쪽

우리는 워홀이 통조림에 했던 발견을 자신에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통조림은 워홀을 사랑하고 평생의 연인으로 삼을 겁니다.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요. 자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봐준 사람이 처음이니까요. (웃음) 아무도 자기를 중요하게 혹은 예쁘게 안 봐줬어요. 그런데 워홀은 ‘너 대단히 예쁘다’라고 끌어서 액자 속에 걸어놓아줬어요.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얘기예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115쪽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들고 들여다보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신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이에 대해 굉장히 시니컬하게 쓴 글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떤 소설을 말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열차 밑으로 몸을 던져 사망.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프랑스의 지방 도시에서 비소를 음독하고 사망.

아시겠어요? 첫 번째 기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두 번째 기사는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세 번째는 『보바리 부인』이고요. 정말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신문에는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겨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드라마는 대단한 거죠. 그래서 신문을 읽으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는 뜻입니다.-131쪽

그는 대화의 소재를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찾았다. (…) 그는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대신에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알랭 드 보통) -136쪽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말하죠.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라고. 땅버들 씨앗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땅버들 씨앗들이 의도를 가지고, 이번 물살이 좀 안전하니까 이번에 타야지, 하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급한 물이 내려오면 어쩔 수 없이 쓸려가야 해요.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어요.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날줄을 잘 세운다고 해도 씨줄이 너무 세게 밀고 들어오면 휘게 되어 있어요. 살다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요. 급한 물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럼 타야지 어쩌겠어요. 그러고 나서 결국 어딘가에 닿았어요. 사실 나는 거기에 닿고 싶지 않았는데, 아래쪽으로 3미터쯤 더 가고 싶었는데 그 지점에 가지 못하고 닿았단 말이죠. 그럼 어쩌겠어요. 땅버들 씨앗처럼 거기서 최선을 다해 싹을 틔워야죠. -154쪽

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엑상프로방스의 사람들은 파리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곁가지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비극은 모두가 서울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각 도시마다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도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사카, 알바니, 아를, 전부 자기들이 중심에 있고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유독 모두가 서울을 봐야 해요. 서울이 아니면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이고, 다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수원이면 수원으로서 온전히 행복하고, 진천이면 진천으로 행복하다면, 거기서 자기 일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할 텐데요. -191쪽

사람을 대할 때도 나무를 대하듯이 하면 돼요. ‘너는 왜 욕을 하고 그러니?’ 화를 내봤자 원래 그런 사람인 거예요. 이 문장 속 비유와 맞물려 생각하면 무화과나무한테 버찌가 안 열린다고 화내는 건 어리석다는 거죠. 원래 무화과가 열리는 나무니까요. 사람은 다 다르고, 각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의 욕망으로 채워넣고, 제멋대로 실망하곤 다툴 필요가 없어요. 무화과나무 아래서 버찌가 열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요. -200쪽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203쪽

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단어의 논리적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했으나 이 단어 사이를 흘러가는 의미론적 강물의 속삭임은 듣지 못했던 것이다. (밀란 쿤데라)-257쪽

그러니까 똥이 인정되지 않는 세상이 키치라는 겁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는 세상이죠. -265쪽

그런데 지금 쉰에 진짜 불혹이 왔어요. 남들은 지천명知天命이라는데 전 이제 불혹을 맞았어요. 그리고 이제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 다른 곳에 답이 있는 걸 알지만 이제 여기에도 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사는 이 삶을 잘 살면 답이 나온다는 걸 이제 알아요. 다른 어떤 생에 대한 동경도 없어요.-305쪽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프리초프 카프라)-341쪽

선사 조주가 "차 한잔 들게"라고 한 말에는 아무런 신비나, 형이상학이나, 배면에 숨긴 함축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액면 그대로입니다. 우리 모두 차를 끓이고, 따르고 마십니다. 그게 ‘있어야 할’ 전부입니다. (한형조) -343쪽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봄은 우리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네.-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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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만으로 시작하는 만남이 몇이나 될까. 왜 이 중년부부는 내 부모님이 되었는가. 왜 하필 이 사람이 나의 형제인가. 인간으로서 맨 처음 맺게 되는 관계에서조차 우리의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친구나 연인을 사귈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분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요?”라고 물을 때 흔히 하는 대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인연이지요, 뭐.” ‘인연’이라는 단어의 모호함만큼이나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법칙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만남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 우연한 시작이 내 인생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는 더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다. 흔한 영화나 소설만 봐도, 아니 친구들의 수다만 듣고 있더라도 의도하지 않았던 관계의 시작이 얼마나 크게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문재인과 노무현의 만남도 그렇다. 이제 문재인의 인생에서 노무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 보인다. 대학시절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 실패하고 얻게 된 첫 직장에서 노무현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젊은 시절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우연한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크게 뒤흔들어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41쪽

 

  문재인은 이 신비한 만남과 그와 함께 겪어왔던 일련의 사건들을, 그저 ‘운명’이라는 한 단어로 담담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래도 노무현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만한 것이어서 문재인을 험난하지만 의미 있는 길로 이끌어갔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문재인의 삶이 노무현의 행보를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나갔는지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또 한 번 마주한다.

 

나는 '원칙'얘기를 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보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외로우셨던지 당신 생각을 지지하자 매우 기뻐했다.– 99쪽


  내 삶에서 향기가 나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다면, 정반대의 결과를 낳겠지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노무현에게 문재인 같은, 문재인에게 노무현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혜로운 연인을 만나면 단번에 인생이 바뀐다는 '바보온달 판타지'가 깨지는, 새삼 걱정스러우면서도 정신이 번쩍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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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절판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방법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5쪽

모두가 하는 관행을 혼자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깨끗한 변호사. 아마 그 분은, 내가 운동권 출신 변호사니까 당연히 그렇게 지향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차제에 당신도 원래 해 보고 싶었던 일을, 나를 핑계 삼아 실행을 하신 것으로 짐작된다. 선배 변호사로서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고 본을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양심적이고 의지가 강한 분이었다.-35쪽

우리 스스로 깨끗해야 했다. 당시 독재 권력이 흔히 쓰는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 비리나 약점을 찾아 협박하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수법이다. 뒷조사로 탈세, 사생활 비리 등을 캐내 사람 망신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신세 망치고, 민주화운동에도 누를 끼칠 수 있었다. 대의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절제하고 조심했다.-43쪽

아이들은 변호사를 3D업종처럼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일을 맡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늘 행복했다.-76쪽

그 후 그는 대선 행보를 본격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여느 정치인들과 달랐다. 주변의 참모들은 당연히 조직을 키우고 돈을 준비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그 대신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학습팀을 꾸려 국정운영에 필요한 학습을 열심히 했다.-95쪽

나는 '원칙'얘기를 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보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외로우셨던지 당신 생각을 지지하자 매우 기뻐했다.-99쪽

아내가 몇 번 면회를 왔다. 제1공수여단에 배치된 후 처음 온 면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절 군대 면회는 무조건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 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어머니의 면회라도 통닭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먹을 건 하나도 가져오지 않고 안개꽃만 한 아름 들고 왔다. 아무리 오빠가 없어도 그렇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였다. 면회소에서 아무 것도 팔지 않을 때이니, 꽃을 가운데 놓고 얘기만 나누다 돌아왔다. 나도 우스웠지만 음식 대신 꽃을 들고 내무반으로 돌아온 걸 본 동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마 대한민국 군대에 이등병면회 가면서 음식 대신 꽃을 들고 간 사람은 아내 밖에 없을 것이다.-161쪽

입대 후 많은 일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다 해낼 수 있더라는 경험, 그것이 나를 훨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변호사를 할 때나 청와대에 있을 때 처음 겪는 일이 많았다. 내 개인적으로 처음일 뿐 아니라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을 때도 많았다. 스스로의 판당느로 부딪쳐 가야 했는데, 그럴 때 그런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됐다.-165쪽

청와대 근무시간이 길어 사생활이 크게 없어진 것 말고는, 이전 생활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업무 외 시간에 내 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 방이 따로 없는 대중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줄서서 기다리는 것, 비행기나 기차의 일반좌석을 이용하는 것 등의 모습이 오히려 특별한 것인 양 신기해했다. 조그만 연립주택에 사는 것도, 수행원 없이 혼자다니는 것도, 심지어 휴일에 등산가서 시민들과 맞닥뜨리는 것조차 특별한 일인 양 여겼다. 그동안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221쪽

물론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파병할 수 있다. 그것이 국가경영이다. 진보·개혁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70쪽

과거사 정리작업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국가가 많은 개인들에게 참으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한 개인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놓기도 했다. 사건을 조작해 새파란 젊은이들을 잡아가뒀다.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감옥에서 인생을 썩게 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 삶까지 파탄으로 몰았다. 간첩의 자식이라고 공직은 커녕 취업도 못하게 했다. 주변에선 손가락질 당하고 한 집안 전체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잘못이 다름 아닌 국가에 의해 자행됐다. 국가가 그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금전적으로 배상을 한들 그들의 빼앗긴 삶과 인생이 돌아오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국가의 진정성이다. 국가가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 또 그런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국민들 사이에서도 화해와 통합이 이뤄진다.-324쪽

"결국은 다 내 책임이다. 내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장래에 대해 아무런 믿음을 못주니 집사람과 정상문 비서관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오래 정치를 하면서 단련이 됐지만, 가족들은 단련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399쪽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441쪽

나는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복기를 강조한다. 복기란, 정권을 운용한 우리뿐 만이 아니다. 범야권,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개혁진영 전체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을 극복해 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는 것 같다.-447쪽

『진보집권플랜』을 비롯해서 모두들 앞으로 진보·개혁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할 것인가이다.-457쪽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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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 Sherlock Holmes: A Game of Shadows
영화
평점 :
개봉예정


왜 제목이 셜록 홈즈인지 모르겠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다. 셜록 홈즈 탐정물을 기대하지 않고 본다면, 재미 있고 볼거리도 많고, 소소한 재미도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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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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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너는 얘기를 참 재미나게 하는구나, 칭찬했다. 내가? 엄마는 고갤 끄덕였다. 그래 얘기를 참 재미나게 하는구나, 거듭 말했다. 내 얘기가 재밌었어? 그래……재밌었다. 내 얘기가 재미있었다구? 너는 마음이 짠해졌다. 너의 얘기가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점자도서관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네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깨달았다. 도시로 나온 뒤의 너는 어땠는가. 너는 엄마에게 늘 화를 내듯 말했다. (중략)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45쪽

엄마를,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그를 바람벽 앞에 재우지 않으려고 나는 벽 쪽에 누워야 잠이 잘 온다, 며 자리를 바꿔 눕던 엄마를 향해 가졌던 빛바랜 다짐들, 엄마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오면 따뜻한 방에서 자게 하겠다던 맹세들.-98쪽

-엄마! 형만 장땡이야?
-그려! 형만 장때이다!
엄만 생각해볼 것도 없이 둘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먼 우린 없어도 돼?
-그려! 없어도 돼!
-그믄 우린 아버지 찾아간다!
-뭐야?
엄마가 둘째의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그려! 너도 장땡이다. 너그들 다 장땡이여! 우리 장땡들! 이리들 와봐!
그제야 샘가에 와르르 웃음소리가 퍼졌다.-107쪽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앞서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167쪽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198쪽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쪽

엄마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특히 엄마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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