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중에서-6쪽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강의의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여러분이 제게 ‘울림’을 준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겁니다. 결국 저는 광고하는 사람이니까요. (웃음)-14쪽
땅콩을 거두었다 /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 덜된 놈! 덜 떨어진 놈! (이철수)-22쪽
깊은데 / 마음을 열고 들으면 / 개가 짖어도 / 법문이다 (이철수)-26쪽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최인훈)-32쪽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45쪽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47쪽
봄의 흙은 헐겁다. (…)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다. 봄 풀들의 싹이 땅 위로 돋아나기 전에, 흙 속에서는 물의 싹이 먼저 돋아난다. 물은 풀이 나아가는 흙 속의 길을 예비한다. (김훈)-81쪽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90쪽
우리는 워홀이 통조림에 했던 발견을 자신에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 통조림은 워홀을 사랑하고 평생의 연인으로 삼을 겁니다.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요. 자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봐준 사람이 처음이니까요. (웃음) 아무도 자기를 중요하게 혹은 예쁘게 안 봐줬어요. 그런데 워홀은 ‘너 대단히 예쁘다’라고 끌어서 액자 속에 걸어놓아줬어요.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얘기예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115쪽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들고 들여다보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신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알랭 드 보통이 이에 대해 굉장히 시니컬하게 쓴 글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떤 소설을 말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열차 밑으로 몸을 던져 사망. -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프랑스의 지방 도시에서 비소를 음독하고 사망.
아시겠어요? 첫 번째 기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두 번째 기사는 『안나 카레니나』입니다. 세 번째는 『보바리 부인』이고요. 정말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신문에는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겨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드라마는 대단한 거죠. 그래서 신문을 읽으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 그 안에 무궁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는 뜻입니다.-131쪽
그는 대화의 소재를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찾았다. (…) 그는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대신에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알랭 드 보통) -136쪽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말하죠.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라고. 땅버들 씨앗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땅버들 씨앗들이 의도를 가지고, 이번 물살이 좀 안전하니까 이번에 타야지, 하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급한 물이 내려오면 어쩔 수 없이 쓸려가야 해요.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어요.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날줄을 잘 세운다고 해도 씨줄이 너무 세게 밀고 들어오면 휘게 되어 있어요. 살다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요. 급한 물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럼 타야지 어쩌겠어요. 그러고 나서 결국 어딘가에 닿았어요. 사실 나는 거기에 닿고 싶지 않았는데, 아래쪽으로 3미터쯤 더 가고 싶었는데 그 지점에 가지 못하고 닿았단 말이죠. 그럼 어쩌겠어요. 땅버들 씨앗처럼 거기서 최선을 다해 싹을 틔워야죠. -154쪽
그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엑상프로방스의 사람들은 파리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곁가지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비극은 모두가 서울을 동경하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가까운 일본만 해도 각 도시마다 자부심이 있어서 다른 도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오사카, 알바니, 아를, 전부 자기들이 중심에 있고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유독 모두가 서울을 봐야 해요. 서울이 아니면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이고, 다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수원이면 수원으로서 온전히 행복하고, 진천이면 진천으로 행복하다면, 거기서 자기 일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행복할 텐데요. -191쪽
사람을 대할 때도 나무를 대하듯이 하면 돼요. ‘너는 왜 욕을 하고 그러니?’ 화를 내봤자 원래 그런 사람인 거예요. 이 문장 속 비유와 맞물려 생각하면 무화과나무한테 버찌가 안 열린다고 화내는 건 어리석다는 거죠. 원래 무화과가 열리는 나무니까요. 사람은 다 다르고, 각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의 욕망으로 채워넣고, 제멋대로 실망하곤 다툴 필요가 없어요. 무화과나무 아래서 버찌가 열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요. -200쪽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203쪽
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단어의 논리적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했으나 이 단어 사이를 흘러가는 의미론적 강물의 속삭임은 듣지 못했던 것이다. (밀란 쿤데라)-257쪽
그러니까 똥이 인정되지 않는 세상이 키치라는 겁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는 세상이죠. -265쪽
그런데 지금 쉰에 진짜 불혹이 왔어요. 남들은 지천명知天命이라는데 전 이제 불혹을 맞았어요. 그리고 이제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 다른 곳에 답이 있는 걸 알지만 이제 여기에도 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사는 이 삶을 잘 살면 답이 나온다는 걸 이제 알아요. 다른 어떤 생에 대한 동경도 없어요.-305쪽
만물은 서로 의존하는 데에서 그 존재와 본성을 얻는 것이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프리초프 카프라)-341쪽
선사 조주가 "차 한잔 들게"라고 한 말에는 아무런 신비나, 형이상학이나, 배면에 숨긴 함축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액면 그대로입니다. 우리 모두 차를 끓이고, 따르고 마십니다. 그게 ‘있어야 할’ 전부입니다. (한형조) -343쪽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정작 봄은 우리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네.-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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