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만으로 시작하는 만남이 몇이나 될까. 왜 이 중년부부는 내 부모님이 되었는가. 왜 하필 이 사람이 나의 형제인가. 인간으로서 맨 처음 맺게 되는 관계에서조차 우리의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친구나 연인을 사귈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분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요?”라고 물을 때 흔히 하는 대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인연이지요, 뭐.” ‘인연’이라는 단어의 모호함만큼이나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은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법칙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만남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 우연한 시작이 내 인생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는 더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다. 흔한 영화나 소설만 봐도, 아니 친구들의 수다만 듣고 있더라도 의도하지 않았던 관계의 시작이 얼마나 크게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가는지 알 수 있다. 문재인과 노무현의 만남도 그렇다. 이제 문재인의 인생에서 노무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 보인다. 대학시절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에 실패하고 얻게 된 첫 직장에서 노무현을 만난 후, 그의 인생은 젊은 시절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우연한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크게 뒤흔들어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41쪽

 

  문재인은 이 신비한 만남과 그와 함께 겪어왔던 일련의 사건들을, 그저 ‘운명’이라는 한 단어로 담담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래도 노무현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만한 것이어서 문재인을 험난하지만 의미 있는 길로 이끌어갔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문재인의 삶이 노무현의 행보를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나갔는지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또 한 번 마주한다.

 

나는 '원칙'얘기를 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보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외로우셨던지 당신 생각을 지지하자 매우 기뻐했다.– 99쪽


  내 삶에서 향기가 나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다면, 정반대의 결과를 낳겠지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노무현에게 문재인 같은, 문재인에게 노무현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지혜로운 연인을 만나면 단번에 인생이 바뀐다는 '바보온달 판타지'가 깨지는, 새삼 걱정스러우면서도 정신이 번쩍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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