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9월
절판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방법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5쪽

모두가 하는 관행을 혼자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깨끗한 변호사. 아마 그 분은, 내가 운동권 출신 변호사니까 당연히 그렇게 지향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차제에 당신도 원래 해 보고 싶었던 일을, 나를 핑계 삼아 실행을 하신 것으로 짐작된다. 선배 변호사로서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고 본을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양심적이고 의지가 강한 분이었다.-35쪽

우리 스스로 깨끗해야 했다. 당시 독재 권력이 흔히 쓰는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 비리나 약점을 찾아 협박하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수법이다. 뒷조사로 탈세, 사생활 비리 등을 캐내 사람 망신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신세 망치고, 민주화운동에도 누를 끼칠 수 있었다. 대의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절제하고 조심했다.-43쪽

아이들은 변호사를 3D업종처럼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일을 맡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늘 행복했다.-76쪽

그 후 그는 대선 행보를 본격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여느 정치인들과 달랐다. 주변의 참모들은 당연히 조직을 키우고 돈을 준비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그 대신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학습팀을 꾸려 국정운영에 필요한 학습을 열심히 했다.-95쪽

나는 '원칙'얘기를 했다. "우리가 쭉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역시 어려울 때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땐 힘들어도 나중에 보면 번번이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후보님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외로우셨던지 당신 생각을 지지하자 매우 기뻐했다.-99쪽

아내가 몇 번 면회를 왔다. 제1공수여단에 배치된 후 처음 온 면회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절 군대 면회는 무조건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 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어머니의 면회라도 통닭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먹을 건 하나도 가져오지 않고 안개꽃만 한 아름 들고 왔다. 아무리 오빠가 없어도 그렇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였다. 면회소에서 아무 것도 팔지 않을 때이니, 꽃을 가운데 놓고 얘기만 나누다 돌아왔다. 나도 우스웠지만 음식 대신 꽃을 들고 내무반으로 돌아온 걸 본 동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마 대한민국 군대에 이등병면회 가면서 음식 대신 꽃을 들고 간 사람은 아내 밖에 없을 것이다.-161쪽

입대 후 많은 일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다 해낼 수 있더라는 경험, 그것이 나를 훨씬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변호사를 할 때나 청와대에 있을 때 처음 겪는 일이 많았다. 내 개인적으로 처음일 뿐 아니라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을 때도 많았다. 스스로의 판당느로 부딪쳐 가야 했는데, 그럴 때 그런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됐다.-165쪽

청와대 근무시간이 길어 사생활이 크게 없어진 것 말고는, 이전 생활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달라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업무 외 시간에 내 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 방이 따로 없는 대중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줄서서 기다리는 것, 비행기나 기차의 일반좌석을 이용하는 것 등의 모습이 오히려 특별한 것인 양 신기해했다. 조그만 연립주택에 사는 것도, 수행원 없이 혼자다니는 것도, 심지어 휴일에 등산가서 시민들과 맞닥뜨리는 것조차 특별한 일인 양 여겼다. 그동안 고위 공직자들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221쪽

물론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파병할 수 있다. 그것이 국가경영이다. 진보·개혁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270쪽

과거사 정리작업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국가가 많은 개인들에게 참으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한 개인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놓기도 했다. 사건을 조작해 새파란 젊은이들을 잡아가뒀다.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감옥에서 인생을 썩게 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 삶까지 파탄으로 몰았다. 간첩의 자식이라고 공직은 커녕 취업도 못하게 했다. 주변에선 손가락질 당하고 한 집안 전체를 풍비박산으로 만든 잘못이 다름 아닌 국가에 의해 자행됐다. 국가가 그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금전적으로 배상을 한들 그들의 빼앗긴 삶과 인생이 돌아오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국가의 진정성이다. 국가가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 또 그런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국민들 사이에서도 화해와 통합이 이뤄진다.-324쪽

"결국은 다 내 책임이다. 내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장래에 대해 아무런 믿음을 못주니 집사람과 정상문 비서관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오래 정치를 하면서 단련이 됐지만, 가족들은 단련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399쪽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441쪽

나는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복기를 강조한다. 복기란, 정권을 운용한 우리뿐 만이 아니다. 범야권,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개혁진영 전체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노무현의 성공과 좌절, 참여정부의 성공과 좌절을 극복해 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는 것 같다.-447쪽

『진보집권플랜』을 비롯해서 모두들 앞으로 진보·개혁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할 뿐,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할 것인가이다.-457쪽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4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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