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는 얘기를 참 재미나게 하는구나, 칭찬했다. 내가? 엄마는 고갤 끄덕였다. 그래 얘기를 참 재미나게 하는구나, 거듭 말했다. 내 얘기가 재밌었어? 그래……재밌었다. 내 얘기가 재미있었다구? 너는 마음이 짠해졌다. 너의 얘기가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점자도서관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네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방식이 달랐음을 깨달았다. 도시로 나온 뒤의 너는 어땠는가. 너는 엄마에게 늘 화를 내듯 말했다. (중략) 너는 엄마에게 너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하는 일이 엄마의 삶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여겨졌다.-45쪽
엄마를,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그를 바람벽 앞에 재우지 않으려고 나는 벽 쪽에 누워야 잠이 잘 온다, 며 자리를 바꿔 눕던 엄마를 향해 가졌던 빛바랜 다짐들, 엄마가 다시 이 도시를 찾아오면 따뜻한 방에서 자게 하겠다던 맹세들.-98쪽
-엄마! 형만 장땡이야? -그려! 형만 장때이다! 엄만 생각해볼 것도 없이 둘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먼 우린 없어도 돼? -그려! 없어도 돼! -그믄 우린 아버지 찾아간다! -뭐야? 엄마가 둘째의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그려! 너도 장땡이다. 너그들 다 장땡이여! 우리 장땡들! 이리들 와봐! 그제야 샘가에 와르르 웃음소리가 퍼졌다.-107쪽
열일곱의 아내와 결혼한 이후로 오십년 동안 젊어서는 젊은 아내보다 늙어서는 늙은 아내보다 앞서 걸었던 당신이 그 빠른 걸음 때문에 일생이 어딘가로 굴러가 처박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167쪽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198쪽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254쪽
엄마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특히 엄마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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