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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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재미있는 역사책이다. 저자 자신도 '최선을 다해 선정적으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왕가 계보도도 이해를 돕는다. 익숙한 소재들이지만 이야기를 잘 엮어서 한 번 손에 쥐면 놓을 수 없도록 만든다. 재미 만을 강조해서 내용의 깊이를 잃은 것도 아니다. 


  예컨대, '코르테스'와 '루터'를 다룬 장을 읽다보면 종교의 유익함과 해악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든다. 서구의 아메리카 식민지화가 재평가 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꽃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다보면 원주민 제국이 무너진 내부요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잘못된 믿음이 사람을 어디로 오도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되고, 그런 지배체제 하에서 피지배층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코르테스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게 무리도 아닌 것 같다. 물론 바다를 건너온 그들도 자원을 수탈하고, 노예로 부리는 등 각종 만행을 일삼았지만 말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토속 신앙 뿐만 아니라 면죄부 또는 면벌부를 발행한 중세 가톨릭교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신교는 완벽한가? 종교 개혁가 루터도 그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그가 개혁하려고 했던 '구교' 보다 '신교'가 더 개혁적이고 가치지향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폭력을 조장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을 더 억압적으로 사상을 개조하려 들기도 했다. 종교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었던 중세에는 '잔 다르크'처럼 믿음 앞에 자신을 내던지기도 하고, '콜럼버스'처럼 믿음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근대에는 종교의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IS나 원리주의 기독교회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신성성을 상실한 근본주의 도그마'는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이 외에도 얻을 것이 많은 책이다. 볼거리와 읽을 거리도 충분하다. 벌써부터 2권을 기다리게 된다.

잉글랜드가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선구자가 폭군이자 편집증 환자이자 호색한인 헨리 8세다.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겠지만, 역사의 발전은 반드시 선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169쪽)

자기네들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언어가 없는 것이고,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종교가 없는 것과 같다. 말을 빨리 따라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말을 금방 배울 것이니 곧 좋은 하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돌아갈 때 본보기로 여섯 명을 붙잡아서 군주께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것이다. 약 1만 5,000년 정도 서로 격리되어 살아온 사람들이 마침내 만난 첫날, 유럽인들은 곧장 이곳을 지배해 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리라 결정한 것이다. (198쪽)

루터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극단적인 공격성을 띠게 된다. 그는 독설로 남을 공격하고 자신을 옹호했는데, 때로 그 말과 글은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은 무엇을 하셨느냐고 묻자 "당신처럼 건방지고 촐랑거리고 꼬치꼬치 캐묻기 좋아하는 영혼을 가두기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을 거요"하고 답했다(이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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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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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읽다가 잊고 있었던 책인데 로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읽기 시작해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로마에서 가보았던 장소와 가이드의 설명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나와서 다시 되새김질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사랑도 타이밍이 중요하지만 책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그 감흥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다. 4세기 후반 로마는 이름만 로마지 사실상 도시국가 로마의 가치와 시스템은 무너져 가고 있었다. 거대한 제국을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한다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에 급급했고, 국가의 활력은 잃어버렸다. 지키고 가꿔나가기에는 너무 비대해져버린 로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이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제국 유지의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기독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밀라노 칙령'으로 공인된 이후 기독교는 그 영향력을 점점 키워간다. 물론 그 이면에는 기독교에 대한 세금 면제 등 국가적인 지원이 밑바탕이 되었다. 기독교의 확대는 말하자면 시대의 흐름이었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그 흐름을 뒤바꿔보려고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이 책의 소제목들을 살펴보면, '제1부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 '제2부 율리아누스 황제 시대' 그리고 '제3부 암브로시우스 주교'이다. 제위 순서대로라면,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라고 제목을 뽑을 만한데도 밀라노의 주교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표지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는 로마황실의 자양강장제로 도입되었던 기독교가 오히려 로마제국을 장악하게 된 것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다른 종교도 아닌 '기독교'가 로마에 공인되고 그 세력을 펼친 것이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로마 카타콤베에서 보았던 그 초기 기독교인들의 열정 때문인지, 교리 자체가 가지는 차별성 때문인지, 이민족의 빈번한 침입에 따른 제국민들의 불안 또는 말세의식 때문인지, 시대적 사상적 사조의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신의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승리'로 4세기는 정리되어 간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의 로마 가치에 대한 '승리'라고 매우 비관적으로 평가했지만, 로마제국 이후에도 (허울뿐이지만) '신성로마제국' 이라는 이름으로 이후에도 오랫동안 '로마'라는 이름이 존속한 것을 보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비관을 가지기 힘들다. 


  이는 이성과 합리, 효율성과 법률체계 등 로마의 가치와 문화가 유럽사회에 남긴 영향이 크고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로마에 가면 기독교 유적과 로마시대 유적들이 혼재되어 있듯이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게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다. 포로 노마노와 판테온, 성베드로성당 등 그 모습 그대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감흥을 자극한다. 로마의 가치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오롯이 살아남아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 이유는 로마가 지켜야할 가치는 '만신(萬神)'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과 관용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당한 세금 징수를 되풀이하는 것만 능사로 삼는 황궁의 무신경한 도둑놈들한테서 민중을 지켜내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전투가 한창일 때 대대장이 자신에게 맡겨진 부서를 방기하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형뿐이야. 그리고 시신을 매장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불명예뿐이야. 대대장보다 훨씬 높고 신성한 지위를 부여받고 그에 상응하는 책무를 짊어진 내가 그 책무를 방기하면 어떤 처벌이 어울릴까. 신들이 나에게 이 기회를 주었다면, 그 일을 하는 동안은 신들이 나를 지켜주리라 믿네. 이 책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고뇌가 나를 덮쳐도, 순수하고 올곧은 이 자각이 나를 떠받쳐줄 걸세. - 율리아누스가 쓴 편지 중에서 (158쪽)

관료 기구는 내버려두기만 해도 비대해진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와는 달리 관료 세계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자기 보존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동류-바꿔 말하면 ‘기생충‘-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자기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로 끝나게 마련이다. 관료 기구의 개혁은 관료들을 ‘강제하고 복종시키는 힘‘을 가진 권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199쪽)

로마 시대의 모작이 모작의 영역을 넘어설 만큼 훌륭한 것은 로마인이 그리스 문화를 사랑하고, 패배자한테도 그 사람이 잘하는 일을 맡기는 일관된 관용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전 그리스의 걸작이 만들어진 지 2천 4, 5백 년이 지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그 걸작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로마 시대의 모작‘ 이라는 단서가 붙더라도 전 세계의 미술관이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는 뛰어난 ‘모작‘이기 때문이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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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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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은 없었지만 쉽게 나올 수 없는 사유의 결과물들이 알차게 들어있다. 현대건축 최대의 적은 형광등이라는 말과 거실에 놓인 TV는 선사시대 동굴 속 모닥불의 재현이라는 생각들이 흥미롭다. 인문학이라는 게 별게 아니다. 건축을 통해 인문적으로 사고하는 것, 기분좋은 이종 간의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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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임금이 되기까지 - 격랑을 견딘 왕자, 탕평군주가 되다
홍순민 지음 / 눌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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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를 더 깊이 알기 위해서 임금이 되기 전 시기를 살펴본다는 시도는 좋았지만, 숙빈 최씨나 환국정치 등 영조를 둘러싼 배경만 자세히 살피는 바람에 정작 영조 자신이 주변인물이 되어버렸다. 역사 상식은 쏠쏠하게 쌓을 수 있지만 영조에 대한 깊이 읽기로서는 부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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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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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지은이 말대로 우리 사회는 ‘회사 사회‘이다. 회사에서 평화를 찾는 법은 ‘월급‘과 ‘승진‘에서 자유로워지는 심리 상태를 구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되면 지은이처럼 삶에 일대 전환이 일어난다. ‘일‘은 어디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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