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 인생이 빛나는 곤마리 정리법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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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5평 남짓한 그리 크지 않은 집에 신혼살림을 꾸린지도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우리에겐 아이가 태어나 세 식구가 되었다. 이렇게 세 식구가 살게 된 작은 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한다. 집안 구석구석 생활용품들과 육아 용품 및 아이 장난감으로 가득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신혼부부가 그럭저럭 살만하던 집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도무지 모르겠다. 말로만 되뇌던 정리를 드디어 할 때가 온 듯하다. 세 식구가 살고 있는 작은 집을 넉넉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정리 방법은 없을까. 여기저기 혼잡해 있는 물건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제목부터 마음에 와 닿았던 책이 바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책이다.


정리는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만큼 사용하지 않으면서 불필요하게 쌓아두고 있는 물건들이 많다는 얘기다.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내 성격도 한몫을 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정리를 하려고 미루는 습관도 이와 같은 원인이 된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서 아내와 함께 집안 구석구석 감춰진 오래된 물건들을 모조리 정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렸다. 단, 원칙에 따라 버렸다. 이 책의 모토는 '설레는 우리 집'을 만드는 것에 있다. 현관부터 거실, 주방, 침실, 서재, 욕실, 화장실까지. 집안의 모든 공간을 설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원칙이다. 이것을 다시 여섯 가지 세부 원칙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설레는 집을 만드는 여섯 가지 원칙

1. 정리의 90%는 마인드다.

2. 머릿속에 이상적인 생활상을 그려라.

3.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다.

4. '장소별'이 아니라 '물건별'로 정리한다.

5. 올바른 순서로 정리한다.

6. 만졌을 때 설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저자가 알려주는 여섯 가지 원칙에 따라 정리하기 전과 후의 집안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 집이 원래 이렇게 컸었나?" 정리를 다 한 후 아내에게 던진 첫 마디였다. 정말 집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단지 정리만 했을 뿐인데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새로워진 분위기에 절로 기분까지 상쾌해짐은 물론이다. 주말 내내 버리고, 쓸고, 닦고, 옮기고 하느라 힘들었던 보람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리해야 될 책, 주방, 육아 용품 및 생활 소품 등 자잘한 물건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정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가 되고 신이 난다고 해야 될까. 그 이유는 정리를 할수록 '진짜' 설레는 집이 되기 때문이다. 늘 같은 자리에 놓여있던 물건 배치만 옮겨도 새로워 보이는 이유다. 그로 인해 기분까지 좋아지니 집안 정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불러온다. 정리가 서툴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이 책에 공개하고 있는 깨알 같은 정리 방법들을 하나씩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진 좀 더 큰 집에 살지 못하는 내 형편만 탓하곤 했던 게 사실이다. 큰집에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정리하기는 미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리를 하면서 작은 집도 얼마든지 크게 공간 활용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공간 활용의 기본은 정리다. 그리고 그 정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저자의 노하우가 담긴 '설레는 집을 만드는 여섯 가지 원칙'이다. 기분 좋아지는 집으로 바꾸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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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이노베이터 - 창의적인 삶으로 나아간 천재들의 비밀
월터 아이작슨 지음, 정영목.신지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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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소수의 이노베이터들에게 의해 '재창조'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굳이 '재창조'되었다고 얘기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만들어낸 창조물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로 결합하고 융화되어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노베이터들은 선대의 이노베이터들에게 영향을 받아왔다. 혁신가들의 번뜩이는 창의력은 후대의 혁신가들에게 계승된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 21세기 최고의 혁신가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는 퍼스널 컴퓨터의 선구자로 불리는 앨런 케이의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 그 계승 변화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앨런 케이는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러스 엥겔바트로부터, 엥겔바트는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클라이더와 아날로그 컴퓨터의 선구자 버니바 부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결과론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협업'에 의해 '혁신'이라 불리는 창조물들이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천재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창의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타임>지 전 편집장이자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은 이 책에서 그들의 삶을 추적해나간다. 세계 최초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잘 알려진 19세기 여성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까지 약 200년간의 컴퓨터 과학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창의적 인재상을 탐구한다. 그 결과 저자는 이들 혁신가들로부터 하나의 키워드를 도출해내기에 이른다. 그것은 바로 '협업'이다.

요즘은 협업이라는 말보다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된다. TV에서 방영되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며 익숙한 말이 된 듯하다. 컬래버레이션은 개개인의 장단점을 고루 살펴 적절히 배합하고 배분할 때 비로소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개개인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개인의 특별한 능력보다는 팀으로서의 능력이 중요시된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서로의 효율적인 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컬래버레이션의 효과는 마이너스가 되고 만다. 앞선 혁신가들에겐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협업이 있었다. 인터넷의 원형으로 잘 알려진 ARPANET도 이와 같은 협업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전자공학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에니악 이후 컴퓨터 성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트랜지스터 또한 협업에 의한 탄생했다. 협업에 의한 시너지 효과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미처 깨닫지 못 했던 개인의 능력까지 끌어낼 수 있는 것이 협업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능력은 한계에 부딪치게 되지만 협업은 그 한계를 무한대로 확장해버린다. 오픈 소스와 위키피디아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저자가 깨달은 '협업' 시스템을 이용하여 집필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초고가 작성되고 탈고하기까지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의견이 달리고 내용이 추가되고 수정되었다. 내용과 관련한 전문가를 비롯 비전문가들의 의견이 종합되어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페이스북 최고 경영책임자인 셰릴 샌디버그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결과를 얻으려면 어떤 식으로 협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전한다." 이 책의 요지를 한마디로 압축해놓은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날이 갈수록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현대사회에서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인원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보면 그와 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협업이란 단순히 '함께' 일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을 뒤바꾼 천재들의 창조적 혁신은 모두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들에게 있어 협업은 개인이 가진 창의력, 창조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이 책을 통해 전자 컴퓨터 공학의 역사는 물론 새삼 '협업의 중요성'을 알게 된 계기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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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5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G2불균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G2 불균형 - 패권을 향한 미국과 중국의 미래 경제 전략
스티븐 로치 지음, 이은주 옮김 / 생각정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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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 전쟁이 끝난 후 개발도상국 축에도 끼지 못 했던 대한민국이 지금의 모습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은 세계 역사를 통틀어 경이적인 사건이라 할만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선진국 반열에 빠르게 도약한 것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후 아시아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동북아시아의 맹주이자 이제는 명실공히 전 세계의 경제대국이라 불리며 G2의 반열에 오른 중국의 경제성장이다. 과거 20-3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값싼 노동력의 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 세계의 경제 구도를 좌지우지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의 초고속 성장은 한계에 부딪쳤으며 중국의 정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한계선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G2. Group of 2. 오늘날의 미국과 중국을 일컫는 용어다. 미국은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오랫동안 세계의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해오며 늘 G1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G2의 자리는 독일, 일본을 거쳐 현재의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중국이 오늘의 G2가 되기까진 G1인 미국의 영향력이 컸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며 전 세계 최대 생산국이었다면 미국은 바로 최대 소비자였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중국과 미국은 오랫동안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두 나라의 의존성은 '가짜 호황'을 야기했으며 작금과 같은 장기 불황을 초례하는 결과를 초례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불안은 어쩌면 중국이 G2가 된 시점부터 예견된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인 스티븐 로치는 <G2 불균형>을 통해 G2의 상호 의존성이 초래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집어본다. 더불어 '계획과 전략'과 '보이지 않는 손'의 대결 구도로 보이는 G2의 경제 전략을 비교 분석한다. 이를 통해 G2 불균형을 재균형화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를 모색한다. 그동안 고수해왔던 성장 전략을 뒤집는 전략을 내세운다. 중국은 소비자 중심의 경제 전략을 통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지갑'으로 탈바꿈해야 하며 미국은 과잉 소비와 부동산 거품 구조를 버리고 생산자 중심으로 나아가야 함을 지적한다. 이로써 G2의 새로운 융화를 꾀한다.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던 중국은 이미 자국 내 경제 성장 목표를 내수 시장 활성화로 방향을 선회했다. 중국은 미국에 한발 먼저 재균형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해 나가고 있다. 지방의 도시화 정책에 따른 평균 임금 인상과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여 과도한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조장하기 위함이다. 중국의 향후 목표는 저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기간에 변화를 주기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G2의 의지가 담겨 있음이다.

새삼 G2의 '불균형'과 '재균형화'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G2의 경제 전략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같은 목표를 가진 서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효과적인 불균형을 해소하고 자국과 나아가 전 세계의 균형화를 이룰지가 주목된다. 이러한 세계화 2.0 시대에 중국에 이웃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앞으로 행보도 중요하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중국은 명실공히 한국의 최대 수출국임은 틀림없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최고 우방국이다. G2의 대결구도에 있어 한중, 한미 관계가 중요한 이유다. 미래에는 과거 미국이 누렸던 세계 유일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한다. 한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강대국일 수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점이 G2 사이에 껴서 오매불망하는 한국에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G2 재균형화에 따라 한국도 새로운 경제 전략을 모색해야 될 때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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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4 0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5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래의 왕국 - 상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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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모래의 왕국>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다름 아닌 미국 네바다주 남동부에 위치한 사막 도시였다. 아이러니한 점은 라스베이거스라는 이름은 '초원'을 뜻하는 에스파냐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라스베이거스 계곡을 처음 발견한 에스파냐인들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도시의 이름치고는 너무나 자연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와 더불어 떠오른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다. 숨 막히도록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 빌딩과 쉴 새 없이 오가는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 바로 그곳. 현대인들에겐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처럼 여겨지는 이 도시가 뇌리를 스친 건 결코 우연은 아닌 듯하다. 지금의 우리들에게 삶의 터전인 도시가 없다면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시가 한낱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것 자체가 지닌 위태로움은 아닐까 생각된다. 바닷물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는 모래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처럼 말이다.


잘 나가는 대기업 증권맨에서 한순간 도시의 노숙자로 전락하고만 40대 중반의 야마자키. 평범, 아니 그 이상을 웃돌았던 그의 삶이 바닥까지 내려갈 줄은 그 자신조차 알지 못 했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떠나버린 지금 그에게 남은 건 자신의 몸뚱어리와 주머니 속 100엔이 전부다. 삶의 의미도 모두 잃어버린 채 정처 없는 노숙생활을 전전하던 그에게 두 남자가 나타난다. 결코 노숙자의 외모라 할 수 없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동요되는 수려한 외모의 나카무라와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사람의 속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수상한 점술가 류사이가 그들이다. 야마자키가 이들을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역전을 위한, 자신을 버린 이 세상에 대한 역습을 위한 숙명처럼 말이다. 평소라면 절대 만날 일 없는 세 명의 남자가 거대한 이 세상을 향한 역습을 시작하려 한다. 밑바닥까지 내려가본 자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던가. 야마자키가 설계하고 나카무라와 류사이가 실행하는 그들만의 신흥종교 '대지의 모임'이 탄생한다. 과연 '대지의 모임'의 끝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사실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특히, 현란한 눈속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꾀어 광신적인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신흥종교'는 더더욱. 종교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쳐지고 부정적인 시각이 드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야마자키와 그가 만든 '대지의 모임'을 응원했다. 이 세상에서 부정당하고 소외당했던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사실은 내가 소원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 '대지의 모임'이라는 신흥종교 자체는 부정하고 싶지만 그들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진리'는 울림이 있었다. 만약 내가 소설 속에 등장했다면 '대지의 모임'에 맹목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자신이 갖고 있는 불행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해주는 그들에게 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왜 이 책의 제목이 <모래의 왕국>인지 알게 된 듯하다. 아무리 단단하게 쌓아올린 성이라 할지라도 모래로 만든 성은 바닷물에 휩쓸려 무너져 버리고 만다. 아마도 주인공 야마자키가 꿈꾸었던 이상도 견고한 성이 아닌 모래의 성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한 역습이라 하지만 순수함이 결여된 그저 노숙자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짓으로 점철된 이상 세계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나을 뿐이다. 아마도 야마자키가 '대지의 모임'에 속해 있으면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린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비록 다시 노숙생활을 하며 잠자리와 끼니를 걱정할지언정 건강했던 자신으로 되돌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에게 '대지의 모임'이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닌 듯하다. 바닥의 인생에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거란 헛된 희망을 과감히 깨부순 것,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삶의 희망을 찾은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야마자키의 기구한 삶에 많이 공감하게 됐다. 남부럽지 않은 인생에서 추락하여 바닥의 인생을 살았지만 다시 재기하여 일어서고 다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여정을 본 듯하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출렁임 없이 꼿꼿하게 나아가는 인생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론 꼭짓점에 서기도 하고 때론 나락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닐까.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살이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을 새삼 배운 듯하다. 그 이름은 바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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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노바이올렛 불라와요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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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증거다. 때론 그 이름은 내가 죽더라도 오랫동안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도 한다. 이름에 얽힌 우리에게 익숙한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지니게 되는 이름은 우리가 지닌 것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무의미한 것이면서 동시에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이름 석자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행간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헬조선'. 언제부터인지 불황을 넘어 사람으로서 살기 힘든 나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떠나고 싶은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유명사인 우리의 이름 자체엔 행복이 깃들어 있다. 우리보다 못 살고 있는 전 세계의 빈곤 국가에 비하면 말이다. 1967년 영국과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980년에 현재의 모습이 된 짐바브웨 공화국이 그중 하나다. 이 책은 바로 짐바브웨 공화국 출신 여성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소설적 허구가 가미되었지만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여져 있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짐바브웨에 살고 있는 가난한 소녀 달링이 꿈과 희망을 쫓아 기회의 땅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 본인이 달링과 같은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그네들의 삶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문도 모른 채 어른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영어식 이름을 지어준다. 달링과 그녀의 친구들인 베스터드, 갓노즈, 스브호, 스티나, 치포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달링과 친구들의 소원은 단 하루만이라도 배고픔을 느낄새 없이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맨발에 바셀린을 바르고 붉은 흙길을 달려 패라다이스로 달려가는 이유다. 그곳에 가면 적어도 동네에 즐비하게 늘어선 저택의 구아바를 몰래 훔쳐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아바를 먹고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나무에 목을 메단 여자의 시신을 발견한 아이들은 이내 겁을 집어먹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그러다 문득 죽은 여자의 구두를 내다 팔면 빵을 사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자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간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아이들은 버젓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며 하려고 한다. 과연 이 아이들에게 우리는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아메리칸드림'을 외치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여전히 미국이란 나라는 기회의 나라이며 꿈과 희망을 찾아 많은 이들이 떠나는 곳이다. 그러나 현실은 철저하게 냉혹하다. 미국 이민자의 삶이란 결코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업비자 기간이 만료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추방당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메리칸드림'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이곳에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 달링이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소설 속에 그려지는 그녀의 삶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주인공 소녀 달링이 미국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소설의 제목처럼 '새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유도 알 수 없게 지어진 영어식 이름으로 살아가는 가짜 삶의 내가 아닌 진짜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내 이름'을 말이다. 가볍지 않은 이민자의 삶을 무덤덤하게 풀어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내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아온 것일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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