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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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작품과 작가가 있다. 우리는 그 작품들을 고전이라 부르기도 하고 베스트셀러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처음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판매 중지가 되었으며 어느 작품은 출간조차 힘든 경우도 많았다. 지금이야 맘만 먹으면 언제든 그때 그 시절의 유명한 문학 작품들을 읽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문학작품과 작가에게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이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고 있는 문학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과거를 갖고 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은 대부분 순수 문학적 측면이 강하다. 작가와 문학작품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그것 말고 달리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의 우리에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도 과연 그럴까.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문장에서 말했다시피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즉, 문학작품은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사상, 정서 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곧 문학작품을 누가 읽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다수 국민들에겐 그들의 삶과 정서를 대변해주는 이야기지만 이익을 취하는 소수 권력집단에겐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고 혁명의 불꽃을 피우는 글이 된다. 그렇게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권위와 권력에 반한다는 명목 아래 읽을 수 없는 '금서'가 되었다.

Calamus Gladio Fortior(깔라무스 글라디오 포르띠오르). 라틴어로 된 이 문장은 영국 작가인 에드워드 볼워 리턴이 1839년 발표한 역사극 <리슐리외 또는 모략>에서 처음 말해졌다고 한다. 그 뜻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뜻이다. 이 문장을 굳이 여기서 언급한 이유는 단 하나다. 문학작품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가 바로 그 한 문장 속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란 바로 그 나라의 말과 글을 없애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미개한 다수를 깨우치는 계몽의 글을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만약, 그 글이 다수의 사람들에 읽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변화의 시작, 혁명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모든 금서는 한 시대를 뒤엎을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껏 단순히 문학작품으로 알고 읽어왔던 고전들이 이런 엄청난 배경을 지닌 금서란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라는 책 제목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책은 세기의 '금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닥터 지바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나에게 손대지 마라>, <악마의 시>, <피가로의 결혼>, <데카메론>, <호밀밭의 파수꾼>, <수상록>, <롤리타>, <악의 꽃>, <채털리 부인의 연인>, <북회귀선>.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고전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작품들이 어떻게 세기의 금서로 지정이 되었는지 그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파헤친다. 그뿐만 아니라 금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사드, 푸시킨, 빅토르 위고, 윌리엄 포크너 등)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본다. 이 책은 줄곧 고전을 문학작품으로서 매력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켜주는데 하나는 문학작품으로서의 고전을 만나는 기쁨과 문학작품으로 인정받기 이전의 고전에 대한 역사적 탐험이 그것이다. 작가를 따라가다보면 무려 기원전 410년의 작품부터 1988년 발표된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된다. 읽지 못하게 하면 더 읽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알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감추면 감출수록 널리 퍼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금서로 지정된 고전들은 모두 그 시대 베스트셀러였다. 지금까지 전해져 읽히고 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을 듯하다.

시대가 변했어도 금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존재가 미흡할 뿐이다.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와 더불어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도 만들어진다. 그렇게 진실을 말하는 책은 시대를 막론하고 금서가 되어 은폐되어 왔다. 하지만, 은폐된 진실은 언젠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며 그 진실은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고전 작품의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위대한 사상을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진실의 왜곡과 은폐로 점철된 작금의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과연 우리의 역사는 이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후대에 남겨줄지 의문이다. 현시대의 금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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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인간학 - 비움으로써 채우는 천년의 지혜, 노자 도덕경
김종건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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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야근이다. 저녁도 간단히 대충 때우고 밀린 일에 다시 매달린다. 시간은 어느새 9시, 10시를 훌쩍 넘어간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을 한다.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간절하지만 내일 할 일을 생각하니 한숨만 쏟아진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한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던 아내가 깨며 마중 나온다. 아이들은 이미 잠든 지 오래다. 깨어있을 때 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보기만 해도 절로 우울해지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이 '내 얘기네'하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는 와중에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맞보며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정답은 하나. 행복하기 위해서다. 행복을 정의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찾기가 어려울 뿐이다.

우리는 행복에 대해 '채우다'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채운다'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을 행복을 위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아가 나라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계속 채우려고만 한다. 더 이상 채울 공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채움'에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할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그렇다. 바로 '비움'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행복이라는 그릇을 채우기 위해선 나 자신을 비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워야 할까. 노자 <도덕경>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준다.

致虛極 守靜篤

치허극 수정독

비움에 이르기를 극진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하라.

- 도덕경 16장


爲無爲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무위로 행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 도덕경 3장

道 沖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도 충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도는 텅 비어 있어서 아무리 써도 가득 차지 않으니, 깊고 깊어 만물의 근본과 같다.

- 도덕경 4장


위무위 마무사 미무미​

하되 하지 않은 것처럼, 일삼되 일삼지 않은 것처럼, 맛 보되 맛보지 않은 것처럼 하라.

- 도덕경 63장


표현은 다르나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모두 '비움'을 뜻한다. 노자 <도덕경>은 바로 '비움의 철학'이다.


최근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2500년 전의 노자의 가르침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미니멀리즘. 미니멀 라이프. 단순하고 간결함을 추구하며 비우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는 비단 생활방식에서만 보여지지 않는다. 사고방식에서도 단순함은 강조되고 있다. 심플함을 무기로 전 세계의 IT 시장을 뒤바꿔 놓은 스티브 잡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항상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 중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입니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습니다. 생각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려면 생각을 깨끗이 정리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SIMPLE'이다. 아이팟을 시작으로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위대한 발명품은 단순함을 추구하는 그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도덕경>과 같은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 속에서 현재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고전은 그 기대를 결코 져버리지 않는다. 반드시 보답을 해준다. 계속해서 읽고 실천하는 동안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이것이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고전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껏 전해졌고 앞으로 이어져갈 이유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막연히 어렵게만 여겼던 <도덕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특히, 이 시대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소설 형식 이야기에 노자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현재의 내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던 것 같다. <도덕경>을 현재의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다." 우리가 <도덕경>을 단순히 읽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위로 가득한 자신의 삶에 무위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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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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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주연이 있고 주연 못지않은 조연들이 있으며 이야기를 더욱 맛깔스럽게 살려주는 단역들도 있다.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완성되려면 각자 맡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야기에서 어느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캐릭터는 그 나름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의 탄생을 예고편이라 말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만날 이 이야기가 그렇다.

포크, 나이프, 스푼. 커트러리 서랍을 그 순서로 정리하지 않는 사람은 교양이 없다고 단정 짓는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 그녀의 이름은 브릿마리다. 매사 집안과 주변 상황을 깔끔함과 완벽함으로 무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녀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췰 뿐이다. 남편마저 자신을 수동 공격적인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남편을 내조하고 집안 살림을 하는 자신의 역할을 탓해본 적 없다. 하지만, 남편 켄트는 젊은 여자와의 외도로 그녀를 배신하고 만다. 그로 인해 브릿마리는 집을 나올 것을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은 곧 고용센터 여직원을 찾아가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고 어렵사리 보르그의 레크레이션 센터 관리인에 취직하게 된다. 그렇게 찾아간 보르그는 경제 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한물간 시골 동네에 불과하다. 그곳에서의 첫인상은 도착하자마자 축구공에 머리를 맞고 기절해 쓰러진 것이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동네의 유일한 피자가게 겸 우체국 겸 자동차 정비소 겸 마트 겸 기타 등등 모든 것을 취급하는 잡화상점에서 과탄산소다를 산다. 그녀는 정신이 없을 땐 일단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그렇게 보르그에서의 일상은 시작된다. 여태 한 번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본 적 없는 까칠한 그녀가 수상한 낯선 동네에서 과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오베라는 남자>라는 소설로 일약 전 세계의 독자를 팬으로 거느리게 된 프레드릭 배크만. 전작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인 까칠한 성격의 나이 든 아줌마 브릿마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부터 낯설지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브릿마리'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첫인상은 기대보다는 실망감이 컸다. 왜 하필 그 브릿마리이란 말인가. 물론, 책을 다 읽기 전 아니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의 말이다. 브릿마리라는 까칠한 캐릭터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만들어버리다니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이다. 그의 첫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베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59세의 까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이번엔 결벽증에 까칠하기까지 한 63세 여자의 사랑스러운 매력에 빠져보길 바란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세 편의 소설을 읽고 나니 그의 이야기 스타일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언뜻 보기에 사회 부적응 자다. 까칠하고 결벽증까지 있으며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엘사에게도 약간의 이러한 성향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변화 시킨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주인공 캐릭터의 그것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 속에서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녹아져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가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웃다가 울면 엉덩이에 뿔이 나는데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프레드릭 배크만표 따뜻함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만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멋진 소설이었다. 별로 정이 안 가던 브릿마리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더구나 그녀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네가 부활하기까지 하는데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작가의 차기작엔 또 어떤 까칠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따뜻함 마음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등장할지 기대된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베어타운이라는 소도시의 하키 선수가 주인공이라던데 혹시 이 작품이 등장했던 그 소심한 소년?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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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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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 또는 가족에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더러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삶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대방이 갖고 있는 비밀스러운 과거를 알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모습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못한다. 과거란 그 사람이 지금껏 살면서 걸어온 발자취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있게 삶의 기록이다.

전 세계에 팬을 거르리고 있는 베스트 소설 작가인 라파엘은 3주 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전에 만난 사람과 충동적인 결정으로 인해 결혼에 한번 실패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사람과의 만남으로 사랑하는 아들 테오를 갖게 된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두 번의 실패는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결혼을 앞두고 사랑하는 연인 안나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실수를 하고 만다. 그는 안나에게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과거의 비밀을 털어놓을 것을 강요한다. 안나는 드디어 자신의 과거를 얘기할 때가 왔음을 짐작하고 그에게 불에 탄 세 구의 시체를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말한다. 그 사진을 본 라파엘은 충격에 휩싸이고 곧바로 그녀를 떠나버린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나고 만다. 연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오만은 커다란 두 사람 사이의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안나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라파엘. 하지만, 조사를 거듭할수록 안나는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안나가 더 이상 아니다. 과연 라파엘은 사랑하는 연인의 숨겨진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면서 그녀를 되찾을 수 있을까.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이제는 더 이상 기욤 뮈소에 대한 이 수식어가 낯설지가 않다. 이번 작품은 그가 한국에서 펴낸 13번째 소설이 되었다. 아마 외국 작가로서 국내에 이렇게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그는 한국 내에서 인기 많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 사실을 반증하듯 이번 그의 소설에는 한국인이 사건을 담당했던 전직 형사로 등장하여 눈길을 끈다. 작가가 한국 팬들에게 선사하는 작은 선물이라고 해야 될까. 이로써 전 세계에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한국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동안 기욤 뮈소가 추구해온 판타지적 소설 패턴을 버렸다. 그전까지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쳤다면 이번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과연 이 소설이 그의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변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역시 기욤 뮈소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추구하는 '사랑과 감동'이라는 메인 스토리라인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작품부터 스릴러 장르에 도전장을 던지며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그가 이번에도 매혹적인 스릴러 작품을 펴냈다. 사랑하는 연인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연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거대한 진실이 잘 짜인 각본처럼 술술 풀려나간다. 희대의 연쇄 납치 살인사건과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전혀 상관없을 듯한 사건들이 서로 맞물려 가는 과정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기욤 뮈소만이 할 수 있는 기교다.

<구해줘>라는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다. 지금껏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기욤 뮈소는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 아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된다. 매번 그의 소설을 읽고 난 후 하루빨리 그의 다음 작품을 읽을 날을 눈꼽아 기다리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멋진 소설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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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클럽
팀 피츠 지음, 정미현 옮김 / 루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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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들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국기와 국가다. 그 외 각 나라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문화와 역사 등이 있으며 술 또한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다. 술은 그 나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책이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 외에 많은 것들을 알 수가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외여행을 갈 때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에 대해 궁금해했을 것이다. 

가까운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을 대표하는 술은 무엇일까. 중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칭따오맥주나 이과두주이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술은 황주다. 사실 중국은 워낙 넓고 역사도 깊어 여러 가지 명주가 많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요즘엔 중국의 각 지방을 대표하는 술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당연 사케다. 삼국시대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청주는 사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청주와 사케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케 외에도 일본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사이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전통주인 막걸리 아니면 소주일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이들보다 앞서 만들어져 그 역사가 오래된 술이 바로 청주다. 앞서 일본의 대표 술인 사케로 인해 청주를 일본 술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엄연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유한 우리 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세는 역시 소주와 막걸리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술이 그 나라를 대표한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고향인 거제도를 떠나 부산에서 살고 있는 원호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이 해외 출판사에 반응이 좋아 책을 출간하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쭉 그는 외국 독자들을 상대로만 책을 쓰고 있다. 지금은 자신의 첫 단편소설을 장편으로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이미 원고 마감은 지나있지만 도통 글이 써지지 않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던 중에 형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외도 현장을 잡았단다. 그래서 이혼하겠다고 난리란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이혼이라니. 말 그대로 황혼이혼이다. 그렇게 집 나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부모님의 황혼 이혼을 막기 위해 원호는 고향인 거제도로 향한다. 외도를 했을망정 끼니 걱정을 하시는 영락없는 집안 일꾼 어머니와 유망한 축구선수에서 한순간 다리병신으로 인생 좆 된 큰형, 성형수술로 이제는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여동생 부담과 매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어머니표 막걸리를 세계 최고의 술이라 여기는 원호. 그렇게 은퇴한 전설적인 어부이자 난봉꾼이며 가장 역할 못하는 집 나간 아버지를 제외하고 한자리에 가족이 모인다. 좌충우돌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과연 원호는 집 나간 아버지를 찾아 부모의 이혼을 막고 미처 끝내지 못한 소설을 탈고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작가는 토속적인 한국인이 아닌 오리지널 미국인이다. 과연 미국인인 그가 한국의 서민 문화를 잘 이해하고 한국 독자의 정서에 맞게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기 전까지 내내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한국의 서민 문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막걸리와 소주를 소설의 재료로 기가 막히게 한국적인 소설을 써냈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그냥 한국인이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 한국적인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국인 아내를 만나 한국에서 5년 동안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맛본 막걸리 맛을 잊지 못해 미국에 살고 있는 요즘도 직접 막걸리를 빚어 먹는다고 한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 술을 빼놓고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글쎄, 아마도 술이 없다면 무미건조한 대화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쉽게 꺼내지 못 했던 이야기도 술을 힘을 빌려 하게 되니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술이 아닐는지. 어쩌면 그래서 이 소설이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반 평생을 살아오며 한 번도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 또한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다. 하지만 부자 간의 응어리는 아버지와 술과 함께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 녹듯 사라진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술과 함께다. 한 가족사를 막걸리와 소주가 여과 없이 관통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오랫동안 서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가족 간의 관계가 술술 풀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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