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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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존재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주연이 있고 주연 못지않은 조연들이 있으며 이야기를 더욱 맛깔스럽게 살려주는 단역들도 있다.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완성되려면 각자 맡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야기에서 어느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캐릭터는 그 나름의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의 탄생을 예고편이라 말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만날 이 이야기가 그렇다.

포크, 나이프, 스푼. 커트러리 서랍을 그 순서로 정리하지 않는 사람은 교양이 없다고 단정 짓는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 그녀의 이름은 브릿마리다. 매사 집안과 주변 상황을 깔끔함과 완벽함으로 무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녀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췰 뿐이다. 남편마저 자신을 수동 공격적인 사람으로 치부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남편을 내조하고 집안 살림을 하는 자신의 역할을 탓해본 적 없다. 하지만, 남편 켄트는 젊은 여자와의 외도로 그녀를 배신하고 만다. 그로 인해 브릿마리는 집을 나올 것을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은 곧 고용센터 여직원을 찾아가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고 어렵사리 보르그의 레크레이션 센터 관리인에 취직하게 된다. 그렇게 찾아간 보르그는 경제 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한물간 시골 동네에 불과하다. 그곳에서의 첫인상은 도착하자마자 축구공에 머리를 맞고 기절해 쓰러진 것이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동네의 유일한 피자가게 겸 우체국 겸 자동차 정비소 겸 마트 겸 기타 등등 모든 것을 취급하는 잡화상점에서 과탄산소다를 산다. 그녀는 정신이 없을 땐 일단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깨끗하게 청소를 한다. 그렇게 보르그에서의 일상은 시작된다. 여태 한 번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본 적 없는 까칠한 그녀가 수상한 낯선 동네에서 과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오베라는 남자>라는 소설로 일약 전 세계의 독자를 팬으로 거느리게 된 프레드릭 배크만. 전작인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인 까칠한 성격의 나이 든 아줌마 브릿마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부터 낯설지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브릿마리'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첫인상은 기대보다는 실망감이 컸다. 왜 하필 그 브릿마리이란 말인가. 물론, 책을 다 읽기 전 아니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의 말이다. 브릿마리라는 까칠한 캐릭터를 이렇게 사랑스럽게 만들어버리다니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이다. 그의 첫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베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59세의 까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이번엔 결벽증에 까칠하기까지 한 63세 여자의 사랑스러운 매력에 빠져보길 바란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세 편의 소설을 읽고 나니 그의 이야기 스타일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언뜻 보기에 사회 부적응 자다. 까칠하고 결벽증까지 있으며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엘사에게도 약간의 이러한 성향이 엿보인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들에게는 모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마음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변화 시킨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주인공 캐릭터의 그것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 속에서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녹아져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가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웃다가 울면 엉덩이에 뿔이 나는데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프레드릭 배크만표 따뜻함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만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멋진 소설이었다. 별로 정이 안 가던 브릿마리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더구나 그녀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네가 부활하기까지 하는데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작가의 차기작엔 또 어떤 까칠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따뜻함 마음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등장할지 기대된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베어타운이라는 소도시의 하키 선수가 주인공이라던데 혹시 이 작품이 등장했던 그 소심한 소년?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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