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남자 1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우리에게 한복 입은 남자로 잘 알려진
루벤스의 스케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처음 한복 입은 남자를 알게 된 건 사실 루벤스라는 미술사에 세계사적 발자취를
남긴 거장의 그림에서가 아니라 그가 남긴 작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 한국 소설을 접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아직도 그 소설을 읽고 느꼈던 재미와
감동이 살아나는 듯하다. 그만큼 그 당시 그 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로 인해서 나처럼 루벤스의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소설은 다름 아닌 장원 출판사에서 출간된 오세영 작가의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아~'하는 탄성을 내지르며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이 출간된
지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 다시 한번 한복 입은 남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출간되어 올해 초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의 한복 입은 남자 이야기를 선보였던 박하 출판사, 이상훈 작가의 <한복 입은 남자>가 있다. 그와 더불어 바로 이 책
다빈치북스에서 출간된 전경일 작가의 <조선 남자>가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루벤스의 그림 속 한복 입은 남자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이 두 권의 책이 유독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그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갖고 있는 팩션의 옷을 입었더라도 작가가 추구하는 관점은 변하지 않을 터. 소설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의중이
사뭇 진지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루벤스의 그림 속 한복 입은 남자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사적 의미로 비춰 봤을 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온갖 난무하는 추정만 존재할 뿐 역사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유독 루벤스의 그림 속 한복 입은 남자는 많은 문학 작품에 단골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나는
이번 리뷰에서는 해당 작품에 대해서만 논하기보다는 갖은 주제를 다룬 서로 다른 작품인 이상훈 작가의 <한복 입은 남자>와 전경일
작가의 <조선 남자>를 비교해보는 것 또한 나름의 재미가 있을 듯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작품들을 모두 읽은 독자 중 한 명으로서
두 작품 모두 개인적으로 작가의 새로운 해석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그 상상력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다.

먼저, 이상훈 작가의 <한복 입은
남자>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집권하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유구한 조선의 역사에서 의문스럽게 자취를 감춘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에
초점을 맞추어 루벤스의 그림 속 한복 입은 남자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솔직히 정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던 이유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장영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기와 그 이유에 대한 추정과 서양의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품들과 묘하게 어울리는 점들이 많은 부분 공감된 것은 아닌가 싶다. 또한, 만약 정말 그렇다면 동양의 작은 나라인 조선이 서양의 위대한
천재의 스승이 되며 서양의 역사는 조선에 의해 새로 쓰인 것이라는 점이 어느 정도 사심을 갖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것이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일목요연한 점이 없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점이기도 하다.

전경일 작가의 <조선 남자>는
실로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장엄한 대서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진년 조선을 배경으로 전란을 겪은 충심 가득한 한 인물을 통해 그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루벤스가 살았던 그 먼 이국땅까지 항해를 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루벤스의 그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조선 남자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작가는 어쩌면 그 속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사랑과 우정,
충심과 배신, 선과 악, 욕망과 구원 그리고 숨겨진 동서양의 역사. 이 모든 것인 전경일 작가의 <조선 남자>속에 고스란히 녹아들
아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스펙터클 웰메이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두 작품에 대해서 무엇이 옳다 그렇지 않다
논하거나 어떤 작품이 더 좋고 나쁘다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할 듯싶다. 그것은 작가가 추구한 집필 의도와 작가 나름의 해석에 따라 그 가치와
작품이 갖는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듯하다. 이 두 작품을 통해 그동안
잊혔던 한복 입은 남자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더불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우리의 유구한 역사에 대한 인식도 바로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오만일까. 하지만, 이들 작품이 그만한 가치가 있고 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이 모두 영화화가 되어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한복 입은 남자의 대항해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다음에 두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