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술자리에서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인 줄 알면서도 취하면 내가 꼭 하는 이야기가 이 책의 마지막에 실려있다. 반갑게도 이 책이 재출간되었으니 다시 이야기를 하려면 나는 마지막 페이지부터 시작해야 맞겠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딸과 빵집에 간다. 갓 구운 바게트의 고소한 꽁다리를 먹고 싶다고 딸이 말한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식사할 때 주겠다고 한다. 모든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있을 때 아버지는 잊지 않고 제일 먼저 딸에게 바게트를 건넨다. 딸은 거절한다. 아버지가 아까는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고 한다. 딸이 대답한다. 


"아까는 먹고 싶었어요."


클로에의 남편 아드리앵은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아이들과 부인을 남기고 떠난다. '배를 묶는 밧줄이 풀린' 신세가 된 클로에는 무엇을 해야할 지조차 알지 못한다. 평소 두 마디도 잘 하지 않던 시아버지 피에르는 두 손녀와 며느리를 데리고 시골집으로 간다. 시아버지는 괴로워하는 며느리에게 한편으로 미안해 하면서도 아들을 두둔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이 불쌍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시아버지는 '떠나는 사람의 괴로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되묻는다. 클로에는 그런 시아버지의 말을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 행복해서 다른 여자와 떠난 남자의 삶까지 그녀가 걱정해야 하는 이유가 어딨는가. 그 때 시아버지가 깜짝 놀랄 말을 한다.


나 말이다. 한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어.. 네 시어머니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말이야.(p.100)

그는 마틸드라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피에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혼은 사랑의 그래프에서 최고값을 가지는 이와 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결혼은 그래프의 특정한 구간에서 가장 높은값을 가지는 이와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래프 전체로 보면 최고값은 다른 시기에 나타날 수 있다. 피에르는 마틸드를 알고 나서 이제까지의 사랑을 압도하는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그는 사랑에 미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무엇도 버릴 용기가 없었다. 마틸드를 사랑하는 것과 그의 가족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였지만 별개의 일처럼 생각했다. 그는 무엇도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가끔 비행기를 타면 떨어지기를 기대했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건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클로에는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혼란스러워진다. 어떻게 저렇게 비겁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아드리앵은? 권투 영화가 한 편 있다고 치자. 주인공은 한 명이다. 그는 좌절했고 그만큼 노력했으며 강력한 상대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오롯이 그를 응원할 수 있다. 반대로 처절한 두 명의 주인공이 각기 다른 고통을 이기고 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들이 결승에서 만났다면 우리는 누굴 응원해야 할까. 독자는 처음 클로에를 보았을 때는 당연히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지만, 뒤에 피에르의 비겁한 모습을 보면서 그를 비난한다. 피에르를 비난하는 것과 클로에를 동정하는 것은 병립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작가는 물음을 던진다.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어떤 것이 진짜 행복한 삶인지 말이다. 한쪽의 삶은 규칙과 신의로 쌓아진 단단한 성이고, 한쪽의 삶은 충동과 욕망이 빚어낸 신기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답이 너무 자명하기 때문에 생각할 것도 없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읽다 보면 과연 어떤 것이 답일까에 대해서는 끝없이 되묻게 된다. 어쩌면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모두 정답일 수도 모두 오답일 수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서 자기 자신과 맞서야 할 때가 있는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야.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