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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실린 사례 중 크리스티너라는 27세 여자의 경우는 그중에서도 특이하다.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자기 몸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팔이 머리 밑에 있고, 다리가 하반신에 붙어 있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크리스티너는 그런 인식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발과 땅을 보고 있어야 하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 것인지 끝없이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인식하는 몸에 대한 감각을 보완하기 위해 그녀는 끝없이 청각과 시각을 이용해야만 했다. 어떤 것의 정도를 알 수가 없을 때 우리에게는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매번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 후루쿠라의 경우는 신체적인 무감각이 아니라 정신적인 무감각이 문제였다. 우리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초등학교 때 이미 사람을 삽으로 내리쳐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죽은 새는 구워 먹는 것이 아니라 묻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루쿠라는 그것을 선천적으로 구별할 수 없었다. 후루쿠라는 학창 시절을 겪으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와 함께 자기 생각을 그대로 밝히는 것은 항상 좋지 않은 반응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리스티너의 경우처럼 '당연하게' 할 수 없다면 방법은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동생이 알려준 대로 '아프다'고 하거나 다른 이유로 적절히 자신이 결코 비정상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편의점을 만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전까지 나에게 "이것이 평범한 표정이고 목소리는 이런 식으로 내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천장과 침대가 그 자리에 있고 몸이 거기 있으므로 크리스티나에게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 지 가르쳐줄 생각을 못하는 것처럼, 상대가 앞에 있고 내 생각대로 표정을 짓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므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후루쿠라가 편의점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첫 번째 이유가 '매뉴얼' 때문이었다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균질해지고, 정형화 되었으며,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편의점의 세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편의점 인간'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18년을 일했다. 서른 여섯이지만 다른 어떤 직장에도 나갈 자신이 없었다. 오직 편의점과 사랑에 빠져 그만 보고 살았는데 다른 만남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겨우 일차 관문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서 '티'나지 않게 서 있을 수 있게는 되었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사람들은 틈만 보이면 정규직 일자리는 왜 구하지 않느냐, 남자는 안 만나느냐, 결혼은 언제 할거냐 등을 들이대며 공격해댄다.
그때 그녀를 구원할 적절한 대상인 시하라가 나타난다. 시하라는 세상은 여전히 조몬시대(일본의 선사시대)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가부장적인 사고로 뭉쳐진 이상한 인간이다. 그는 결국 빈틈없이 완벽한 '편의점'의 세계에서 쫓겨난다. 시하라가 볼 때 사냥을 못하면 대접 받지 못하고, 부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족원을 배제하는 사회와 지금이 어찌 달리 보일 수 있겠는가. 같은 논리로 그는 후루쿠라에게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결국 무리에서 추방당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둘은 결정한다. 결혼하기로.
과연 둘은 결혼(형식상일 뿐이지만, 세상은 형식만 갖추면 공격하지 않으므로)을 통해 세상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전에 우리는 어디까지 자유스러운 것일까. 우리는 선사시대에서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한 것일까. 같은 질문들이 짧은 소설에서 계속 던져진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현대 버전 같은 느낌도 든다. 내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서있고, 남이 원하는 얼굴로 표정 짓는 '인간'이 될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에는 언제든 '실격'의 철퇴가 내려진다. 인간실격의 요조든 이 소설의 후루쿠라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우리는 편의점의 매대를 벗어날 수 없는 부속품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붙어 있는 가격표와 상품명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즉각 교체되고 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