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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 전2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이기적 유전자'가 어떤 책인가를 잘 설명해주는 글은 '무지개를 풀며'에 실린 서문이다. 그 첫머리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어떤 출판인은 이를 다 읽고 사흘 밤잠을 설쳤다고 하고, 어떤 선생님은 학생 한 명이 눈물을 흘리며 그 책이 그의 인생을 공허하게 만들었다고 울먹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도킨스는 그의 동료 피터 앳킨스의 이와 같은 말을 인용한다. '우리가 겪는 변화의 가장 심오한 구조는 붕괴이다. 근원에는 오직 부패, 거스를 수 없는 카오스의 파도만이 몰아친다. 모든 목적은 사라지고 방향만 남는다. 우주의 심장부를 깊고 냉정하게 들여다볼수록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냉엄함이다.' 변화의 가장 심오한 구조가 '붕괴'라는 말은 모든 과학자에게 잘 들어맞는 말이겠지만,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인생을 압축할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과학적 진실에 접근하는 대신 달콤한 논리에 현혹당한 사람들은 도킨스의 직설들을 매우 불편해한다. 신의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그가 비난받는 이유는 너무 당당히 무지의 핵심에 당도하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은 인간은 유전자의 보존체에 불과하며,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행동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예상할 것도 없이 엄청난 비난과 치열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 책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수정할 내용이 없이 항상 베스트 목록에 올라있을 정도로 영향력과 인기가 여전하다.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는 SF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상상의 모태가 되어,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했다.
도킨스는 그 연장선상에서 2006년 '만들어진 신'을 펴내며, 논쟁의 불구덩이에 기름을 안고 들어갔다. 종교와 과학이 양립하기 위해선 각각의 영역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 출발점인 '신'의 존재를 양보할 수 없으니 과학이 밝혀낼수록 종교는 맹렬히 공격할 수밖에 없다. 도킨스가 소년 시절 아운들에 다닐 때를 보면 그도 처음에는 절대적인 설계자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특히, 그가 신처럼 숭배하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인생의 소명처럼 신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논증의 기초적인 오류, 즉 설계자가 있기 위해서는 설계자를 설계한 자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여섯 무렵에는 이미 전투적 무신론자가 되었다.
도킨스의 가족사도 관심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이론이 발생하게 된 사소한 배경들이 흥미로웠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의 집필이 시작된 계기가, 단순히 정전 때문에 전기에 의존한 귀뚜라미 연구를 할 수 없었던 순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그가 칭찬해마지 않는 옥스퍼드(대학의 환경에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그다지 못 봤으므로)의 생활과 그의 엑설런트한 친구들 혹은 제자의 이야기까지. 사이먼 배런 코언이나 제인 브룩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등 도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법한 사건들로 꽉 차있다. 런던대학의 대학원생인던 W.D.해밀턴의 이타주의에 대한 설명은, 유한한 개체 안에서 대대로 살아남는 '이기적 유전자'의 시작을 잉태하게 한 씨앗이 되기도 했다.
도킨스와 '新무신론자'로 불리며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써낸 바 있는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암에 걸려서 죽기 전에 쓴 책이 있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인데 그는 이 책에서 종교인들의 일말의 기대를 무참이 무너뜨린다. 평생을 신을 비판하는데 힘을 쏟았던 사람이라도 마지막엔 신의 품으로 귀의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신이 내린 벌이라는 것이 불규칙한 생활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암 정도라면 그의 무기고는 텅 비어 있음에 틀림없다며 마지막까지 독설을 쏟았다. 리처드 도킨스 또한 종교인들의 비난에 대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한 자세를 견지한다. 나는 그들의 이런 당당함을 존경한다. 실험과 연구를 통한 과학적 근거와 수많은 증거를 통한 자신감이 없다면 이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신비주의자들에게 독설을 내뿜으며 그가 70번째 생일에서 낭독한 시가 리처드 도킨스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정말로 늙어서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날까지는
시간의 날개 달린 전차가 예고하는 그곳에.
아직은 내게 어두운 밤을 순순히 길들일 시간이 잇다.
세상을 환히 밝힐 시간이 있다.
또 하나의 새 무지개를 풀어버릴 시간이 있다.
영원한 안식에 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