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차를 주차시킨 후에 밖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영상은 끝없이 움직이지만 바깥의 소리는 이불로 덮어놓은 스피커처럼 나지막이 들릴 뿐이다. 그 순간 나의 세계는 오직 차 안의 공간이 전부이고, 밖의 세상은 스크린처럼 나와 무관한 다른 차원으로 느껴진다. 영화 '밴드 왜건'에서 잭 뷰캐넌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쇼 안에서도 모두 일어난다.'(p.99)고 했던 노래처럼, 세상은 한 발 떨어져 보면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하고 쇼 같기도 하다. 나는 언제든 그 거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그건 내 생각 뿐이다. 내가 문을 열고 한 발만 내딛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성능 좋은 컴퓨터처럼 순식간에 머릿속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아니 그것들이 나를 소유하고 있다. 누가 어떤것을 소유하고 있든간에 불변의 사실은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때 악마가 와서 내 귀에 속삭인다면. 

'너는 내일 죽어, 대신 네가 가진 것 중에서 하나를 없애면 너는 하루를 더 살 수가 있어.'

그렇다면 나와 연결된 이 모든 것들 중에서 무엇을 버려야 할까.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주인공이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집에서 악마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악마는 '나'에게 당신은 내일 죽는다며, 다만 '이 세상에서 한 가지만 없애면, 하루의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괜찮은 제안이긴 한데 그 물건은 악마가 정하는 것이 문제다. 제목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순간에 가면 악마가 '고양이'를 지목할 것이 뻔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기도 전부터 마음이 슬퍼질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항상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한 가지를 잃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진리다. 이 책은 그 진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잃은 것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를 묻는다.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억울한 점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이 곁에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있을 때 잘하면 좋으련만 인간은 또 그렇게는 못한다.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잃어봐야 하는데, 잃어버리면 아무리 소중함을 알았던 대상이라도 다시 찾아올 수가 없다. 그것이 소중한 모든 것들의 아이러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면 그 소중함을 아는 것이 제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가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지옥에 간다고 해도, 그것을 기억한 채 돌아와 다시 삶을 살 수 없는데 그 얼마나 무용한 필요인가. 마찬가지로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위해 잃어버려야 한다면 그 '알게됨'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소설은 뒤로 갈수록 이러한 의문의 순환고리에 빠져든다. 시계가 없어지고, 휴대폰이 없어지고, 영화가 없어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앞의 것들이 사라졌을 때는 장점도 있었고, 자신이 놓쳤던 것들을 다시 되돌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교감을 하고 같은 기억을 가진 고양이가 사라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은 이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것을 없애 버린다면 진짜 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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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존재가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진짜 '나'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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