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인생
이동원 지음 / 포이에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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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질의 공이 회전을 이용해 궤적의 변화를 만드는 것과 반대로 너클볼은 회전 없이 던져지는 것이 특징이다. 축구든 골프든 탁구든 공을 이용하는 운동은 모두 그 회전을 이용한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끝없이 변화를 일으키려 노력하듯, 경기에서 공은 회전을 통해 수많은 변수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공이 회전하지 않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이 회전하지 않는 순간 벌어지는 일은 길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회전하는 공은 열심히 내달리는 인생처럼 정해진 길을 따르고 다만 얼마나 많은 회전을 하느냐에서 변화의 정도가 달라질 뿐이다. 하지만 회전하지 않는 순간 정해진 선은 한순간 사라지고 공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스스로 변화를 만들려는 노력을 멈추고 보이지 않는 공기와의 조우를 통해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마구를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성공한 사람, 성공할 줄 알았는데 실패한 사람, 그리고 실패한 사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이 범주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다음 물음은 '성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주제는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천착하고, 어쩌면 평생 풀어야 할 숙제처럼 안고 가기도 한다. 성공한 인물은 경찰청장이다. 그는 그저 모난 구석 없이 묵묵히 자기 길을 가다 보니 먼저 낙마한 동기들 틈에서 경찰청장이 된 사람이다. 다음 성공하다 실패한 우태진은 이십 대 중반에 프로야구 투수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을 얻고 마침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느덧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는 한국시리즈 7차전 선발로 나설 예정이다. 마지막 한 명, 실패한 사람은 인질범이다. 애초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가 달린 엉성한 인생으로 출발한 그는 27명의 인질을 잡고 있다. 그의 요구 조건은 간단하다. 우태진이 한국시리즈 마지막 선발투수가 될 것. 그가 내려온다면 누군가 죽을 것이라는 것.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그게 인생의 한계다.(p.34)

아무리 집중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는 수도 없이 많다. 우태진은 왕년의 에이스였지만 한국시리즈 7차전은 의욕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야구에서 투수가 위험한 순간은 타자가 일순한 다음이다.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선수들은 확연히 눈에 익은 공을 쳐내기 쉬워지는 법이다. 우태진의 위기이다. 더 나아갈 실력은 뒷받침되지 않지만 쉽사리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 그리고 그때 그는 '너클볼'을 던진다. 인생이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을 때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듯 너클볼은 공기와 만나 변칙을 만들어 낸다. 

 

너클볼을 던지기 위해선 그 모든 힘과 의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너클볼은 나아가는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일단 공을 던진 다음에 마운드와 타석 사이를 흐르는 바람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그 미세한 바람에 자신의 인생을 맡겨야 한다. (p.75)

너클볼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직구를 던질 수 없어서 느린 볼을 던진다는 말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세상을 바꾸려던 노력을 그만두고 바람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겠다는 말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의 공통점이라면 당연히 '야구'가 되겠지만, 실질적인 교집합은 바로 '너클볼'이다. 그들이 속해있던 레일 위를 벗어나 비로소 자연스러워지는 삶, 스스로 바꿔보려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삶이 그들이 향하는 유일한 목표이다. 그것이 어긋나든 옳은 방향으로 흐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오직 그 자체이다. 이것은 오독하면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상투적 문구와 혼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의미는, 내가 흐름에 나를 맡겼다면 결과야 어떻든 다 상관없다는 의미이다. 등장인물들이 팔의 힘을 빼고 바람에 몸을 맡길 때 과연 그들의 '완벽한 인생'은 이뤄졌을까. 이 소설은 뒤로 갈 수록 '완벽한' 것의 의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퍼펙트'의 개념과 다른 것임을, 그리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자꾸 되묻는다. 그리고 답은 역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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