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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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가장 위기를 겪는 시기는 언제일까. 그것은 당연히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독재자가 정권을 잡았을 때이다. 하지만 명백한 공격의 대상이 존재할 때는 그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동력이 결집된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표방한 위정자가 집권 했을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시민들은 이 정도면 민주화가 됐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민주화 운동의 명분을 지지하지 않으므로, 민주화는 완성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부유한다. 


같은 논리로 페미니즘이 가장 약화되는 시기는 언제일까. 그것은 여성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남녀평등이 충분히 이뤄졌다는 생각이 대체적으로 퍼져있을 때가 아닐까. 페미니즘은 세 번의 큰 물결을 일으키며 여성인권의 변혁을 주도했다. 192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지금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 번째 물결 페미니즘의 시대에까지 이르렀다. 거의 백년에 이르렀으니 이제 제법 여성의 인권은 모양새를 갖췄다고 생각하기에 적절한 시기이다. 과연 그럴까. 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이 무력화되듯이, 남녀평등의 가치가 사회전면에 등장하면서 페미니즘 운동은 편견과 오해 속에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1991년 출판된 이 책을 지금 펴내는 이유는 아마도 세 번째 페미니즘 운동이 왜 시작되었는지에서 접근하면, 왜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여전히 약자인지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접근한다면 일부에서 일고 있는 의심과 오해에 대해 논리적 접근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저자가 주목하는 여성 해방의 유일한 해결책은 '아름다움'으로부터 여성이 해방되는 것이다. 왜 '아름다움'으로부터 여성 해방이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는 아름다움은 여성들의 본능이며, 이를 선호하는 남성의 기호는 진화론적이고 생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배워왔었다. 저자는 과거의 여성인권신장 운동의 결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바로 아름다움의 신화가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자 남성 중심의 기득권 세력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성적 판타지를 과장하여 여성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 그저 기준을 정한다고 정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데아처럼 불변의 가치인가가 중요해진다. 아름다움은 얼마나 자의적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굳이 몇십 년을 거슬러가지 않고 불과 15년 전만해도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계란형이었다. 그것은 그 시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V형 얼굴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계란형 얼굴보다 V라인이 대세로 올라섰다. 마오리족은 살찐 음부를 찬미하고 파동족은 축 늘어진 유방을 찬미한다는 사실은, 아름다움의 개념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인가를 설명해준다. 이 유동적인 개념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의 문제에 대해, 그것이 바로 여성의 사회진출을 억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이 다소 비약적으로 설명된 부분도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가 여성의 능력보다는 외모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30년 전에 쓰였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 당시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와 함께 여성의 지위 또한 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움'은 누군가를 향해서가 아니라 여성 스스로를 위해 추구되어야 할 가치라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여권 운동을 벗어나 스스로의 욕망을 발견하고 자신에 몸에 대한 자각을 위한 발전이다. 페미니즘은 기존의 가치나 견고한 사회질서에 대해, 소수나 약자에게 발언권을 허용하고 권리를 부여하는 구도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운동이다. 페미니즘이 단순히 차별을 옹호하는 것에서 벗어나 제3세계 여성이나 동성애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상상의 관념은 항상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었다. 페미니즘 운동을 단순히 여성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부리는 고집으로 생각하지 않고, 불합리한 기준이나 부당한 기득권에 대한 이의제기로 인정하고 발전적으로 수용할 때 우리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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