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9년 4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는 사상 최악의 총기 사고가 발생한다. 학생 두 명이 같은 학교의 학생과 선생님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13명이 죽고 24명이 부상을 입는다. 이 책은 두 명의 가해학생 중 딜런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쓴 사건 이후의 기록이다.  


슬픔이 공포와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육아서적을 보고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훑어볼 때 머릿속 생각은 '어떻게 하면 아이가 잘될 수 있을까'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분신이 오직 양의 방향으로만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음의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은 부모가 그 책임을 게을리 했을 때 뿐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아이가 잘 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뿐, 잘못되는 일은 벌어질 수 없다고 책을 보며 생각한다. 그 편견에 대한 반론이 바로 이 책이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그 사건의 원인이다. 당연히 폭력적인 게임이나 평소 아이의 성향이 용의선상에 오를 것이고, 마지막엔 반드시 '부모'의 책임으로 귀결될 것이다. 얼핏보면 그 원인이라는 것이 사건의 전부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밝히는 원인들 대부분이 사실은 자신 혹은 자신의 아이를 사건의 당사자와 분리시키려는 시도이다. 사실 딜런이 성장하는동안 보인 행동이나 부모의 훈육에서 다른 가정의 그것과 확연하게 분리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 사실을 믿게 되면 평범한 우리 가족의 일원도 이런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 클리볼드가 우리아이는 잘못키운게 아니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녀가 전혀 알지도 못하던 아들 딜런의 모습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알고자 17년간 기록하고 생각했다. 딜런이 우울증이 있었고 그것을 부모가 몰랐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성향은 청소년기의 방황의 한 부분으로 일시적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지만, 딜런은 쉽게 영향을 받는 스타일이었다. 그 옆에는 분노의 표출을 요구하는 에릭이라는 공범 친구가 있었다. 후의 연구에 따르면 '총격 가해자의 25%가 짝을 이루는데, 두 아이 중 한 명은 사이코패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영향을 쉽게 받고 의존적 성향이 있고 우울에 시달리는 아이'라고 한다. 이 글이 딜런의 부모 입장이기에 반드시 옳은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평범한 교육이 영향을 미친것이 아니라면, 딜런의 우울함과 반항적 기질을 표출시키도록 도발한 에릭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모든 남자아이들이 하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힘으로 구분되는 위계와 현실적인 자신의 지위를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은 돕고 싶은 친구가 있어도 그것을 할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현수가 학교 짱을 쌍절곤으로 응징하는 장면을 되돌려 보는 이유는 누구든 중고생 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위계질서를 일거에 전복시킬 강력한 힘에 대한 열망은 남자 아이들이라면 태생적으로 타고 나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 모두의 아들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을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교육을 잘못해서도 아니고 아이가 원래 폭력적이어서도 아니다. 그저 이것은 부모와 이야기 하지 않고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 아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이 말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점이 그녀가 아들의 기록을 되짚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아들이 남의 아이들을 죽인 사건이면서 자기 아들이 죽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에 죽을만큼 미안하고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괴로운 맘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아이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수 없는 그녀의 처지가 그녀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어떤 친구는 그녀가 딜런을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직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고 미안한 맘을 가질 뿐이었다. 


지금 그녀는 자살예방 활동가로 지내고 있다. FBI 조사반 자문이었던 퓨질리어 박사는 '에릭은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책에서도 반복해서 살인 후 자살하는 사건에 대해, 자살을 방지한다면 이에 따르는 살인 또한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다른 피해를 줄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에게 끝없이 손을 내밀어 주는 일로 그녀의 삶은 위안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임을 그 기록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남편 톰이 그의 묘비명에 '이제 끝이라니 감사합니다.'라고 할 것 같다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