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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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종종 '전통적인' 글과 반대 좌표에 자리한다. 물론 전통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글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전의 형식과 주제를 답습한 글의 영향력은 아무래도 잔파도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뒤샹의 변기가 현대 미술을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첫 장에 나오는 이유와 비슷하다. 기존의 예술 개념을 전복시키고 개념미술을 탄생시켰던 뒤샹의 '샘'은 그 작품의 뛰어남이 아닌, 무엇에 어떤 가치를 부여했느냐로 의미를 새로 한다. 명작은 그 작품에 담긴 철학이 그것을 오래 빛나게 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각 장마다 각각의 주제를 중심으로 비슷한 족적을 남긴 동서양의 문장가들의 글을 함께 정리한 책이다. 이 리뷰의 흐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과거의 전통을 훌륭히 계승한 사람들이 아니다. 저자는 이들의 글에 담겨 있는 정신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그것은 '개성', '자유' 그리고 '자연'이다. 이 책에 실린 저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글을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써서 이름을 남긴 이들이다. 이 요건들의 공통점은 좋은 작품인가 아닌가는 기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예술의 목적이 아니듯이, 주제가 중요하지 않은 예술이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이 책에서는 각각의 장에서 특별한 주제를 중심으로 동서양 글쓰기의 비슷한 흐름을 캐치했다. '풍자의 글쓰기'는 조선의 박지원, 청나라의 오경재,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영국의 조너선 스위프트를 비교했고, 나는 누구인가를 다룬 '자의식의 글쓰기'에서는 심노숭, 곽말약, 후쿠자와 유키치,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비교하는 식이다.


이 책의 첫 장이면서 책의 전체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1장 '동심의 글쓰기'를 예로 들면, 1장에서 등장하는 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동심'에서 찾은 작가들이었다. 물론 이들이 시기적으로 아주 일치하는 것은 아닌데, 이덕무가 18세기이고, 이탁오는 16세기, 루소는 다시 18세기, 니체는 19세기였다. 이들이 시기를 달리하고 있지만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그 시기가 바로 전통적인 권위가 해체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체제와 규칙에 익숙하기 전의 모습이다. 이는 바로 이들이 하나같이 되돌아가고자 했던 주제가 '동심'인 이유였다. 저자는 네 명의 학자들이 남긴 어린아이들에 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왜 그들이 그토록 '아이'의 상태로 되돌려야 했는지 들려주고 있다. 마크로스코는 '아이의 진솔함과 단순함이 없다면, 아무리 유명한 화가라도 예술가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결국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 주제는 이 책 전체의 주제와도 맥을 같이하고, 글쓰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필수 요건이다. 


전에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유희열이 참가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대학에서 작곡 방법, 창법 등 다 배웠는데 교수님이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걸 다 배운 이유가 뭔지 아냐며, '니 음악 하라고. 이제 나가서 배운 거 하지 말고 다른 거 하라고 지금까지 가르친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의미를 찾자면 그런 것이 아닐까. 이들이 영원히 역사에 남는 문장가들로 남은 것은 바로 자기만의 글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술의 영역만큼 새로운 것을 가치 있게 인정해주는 곳도 없을 것이다. 계속 연습해오던 방식, 배웠던 형식이 아니라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의 것으로 써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 이 책은 그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재미 있게 읽힌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진정으로 살아있는 글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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