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거울, 영웅전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로마 군주의 거울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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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죽을 위기를 넘기고 '사기'를 써내려갈 때 걱정했던 것은 그의 기록이 황제의 분노를 사서 모두 폐기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호견법(互見法)'을 이용했다. 상호 비교해 가면서 본다는 의미의 이 방법은, 정작 비난하고자 하는 인물의 단점을 다른 인물의 서술에 슬쩍 넣어서 기술하는 식이다. 이 방법의 특징은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면서도 인물을 비판하고, 한 인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군주의 거울'에서 왜 '사기' 이야기를 꺼내는가를 알려면 이 책의 바탕이된 '비교영웅전'의 저자부터 시작해야 한다.

 

'비교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대는 로마시대였다. 그것도 로마가 가장 강성했던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였으니, 그가 그리스인의 이야기를 그리스인의 입장에서 적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사마천이 호견법을 이용한 이유처럼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비교하며 인물의 장단점을 묘하게 배치하고, 선후관계를 조절해가며 글을 완성시킨다. 그가 그렇게 하면서까지 작성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제국의 시대'에 재조명하는 '그리스적인 것의 가치'였다.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벌어지는 검투사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의 비극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이 '군주의 거울'로 읽혔으리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비교영웅전'은 '영웅전'으로 번역되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이 되었지만 저자는 '비교'라는 말이 빠진 것은 큰 실수라고 한다. '영웅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영웅들의 이야기를 적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의 구성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물 두 명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그리스를 건국한 '테세우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에서 시작해서,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와 로마의 입법자 '누마', 그리스를 배신한 '알키비아데스' 로마를 배신한 '코리올라누스', '페리클레스'와 '파비우스 막시무스', '알렉산드로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비슷한 상황과 업적을 남긴 두 인물 50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사속의 인물을 다루면서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아무리 기록에 충실한 작가라 할지라도 그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지 않는 작가는 없다. 플루타르코스가 50명의 영웅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히 그 속에서 영웅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들려주는 성공과 실패의 교훈을 타산지석 혹은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전부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본성 자체는 잘 드러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지만 삶의 위기 상황 속에서 경험하는 충격을 통해 원래의 본성이 마침내 분출된다고. 선한 사람은 이성의 통제로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악한 사람은 주변의 경계심과 본인의 이익을 위한 자제력으로 자신의 본성을 숨길 뿐이다. (p.355)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 페르시아의 군주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이다. 플루타르코스의 책의 마지막 장에, 그리스인도 로마인도 아닌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실린 것은 매우 특이하다. 그는 왕이된 후 반란을 일으킨 동생 소 키루스를 상대로 내전을 벌여 이를 진압하고 결국 그를 죽인다. 그가 불행하게도 '반면교사'의 표본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왕이 된 후의 극악무도함과 폐륜적 행동 때문이었다. 그것은 얼핏 평화로운 환경과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만들어낸 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원래부터 그의 속에서 잠재하던 '악'의 씨앗이었다.  


수많은 역사속의 인물을 만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본성'은 결국에는 드러난다는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이거나 적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순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한 적 있다. 역사속 인물들이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훌륭한 군주 혹은 영웅으로 남고 싶어했던 욕망은 많았지만, 실제 그렇게 해서 훌륭한 기록으로 남은 영웅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플루타르코스가 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남 위에서 군림하기 전에, 자신의 본성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고삐가 풀렸을 때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 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로마의 최전성기에 이 책을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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