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아이돌 그룹이 나오는 가요프로그램을 보다 생각한다. 뒤에서 춤추는 백댄서들은 저 일이 좋아서 하는 거겠지? 만약 그게 돈을 위해서라면? 갑자기 그 손동작, 스텝 하나 하나가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한 것은. 우리 중에 좀 뛰어난 인간이 갑자기 창피하게 느꼈을 것이다. 아니 내가 지금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야근 수당을 받기 위해서라는게 말이돼? 어제 밤새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이 쥐꼬리 반만한 월급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어? 어쩌면 이것은 나의 원대한 야망 실현의 과정이거나,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 위한 순차적 과정이지 않겠어? 이걸 보고 있던 사장님은 매우 흐뭇해 하며 꿈을 이뤄가는 김대리의 어깨를 토닥이고, 급여따위는 생각하지 말라며... 자비따윈 없는 '열정페이'를 지급한다. 하지만 괜찮다. 보람이 있으니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말도 안된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제목이 참 맘에 든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회장님들이 좋아하는 책 중에 항상 최고로 꼽히는 책은 '논어'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까. 하지만 논어는 잘 읽어보면 윗사람이 덕으로 대하면 아랫사람은 알아서 따라온다는 유교적 가치의 출발점이다.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는걸 자신의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냐만, 대부분의 회장님들은 본인은 덕으로 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랫것들은 그 맘을 몰라주고 저 모냥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다시 바꿔보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껴야지 너네는 돈밖에 모르니. 이 속물들아.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란 말야.'
거기에 참 어울리는 말이 책 속에 있다.
'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이런 개념 없는 놈
군대에 처음 가면 각 부대마다 이상한 규칙이 있다. 내가 있던 곳은 이를테면 밥먹을 때 테이블에 팔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거나, 밥을 먹은 후에 일병 이하는 뛰어서 내무반으로 가야 한다는 식이었다. 이것은 나름의 교육을 통해 알려지는데 미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신병이 팔을 올리고 밥을 먹는 모습이 보이면 부대는 발칵 뒤집힌다. 한 발만 떨어져서 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그때는 그랬다. '상식없는 회사원'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부의 규칙에 둔감한 사원이다. 그렇지 않고 잘 적응된 사원에게는 '사회인'이라는 영광스런 호칭이 따라 붙는다. 그는 자신의 운명과 회사의 운명이 같으리라는 철썩같은 믿음으로 완전한 사축이 된다. 물론 그의 운명은 회사와 대체로 같지만 항상 먼저 차이는 것도, 뒤늦게 후회하는 것도 그쪽이다.
저자는 사축을 이렇게 정의 한다.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회사원'
저자는 '보람'을 강조하게 된 상황을 회사 여건의 변화로 설명한다. 과거의 거품경제 때에는 회사의 상황이 그런대로 좋아서 종신고용이니, 연공임금 등을 약속했었다. 그때는 그런대로 '보람'을 느끼며 불합리를 감수할만 했다. 그러나 거품이 사라지고 이러한 고용 시스템이 불가능해져 버렸음에도, '보람' '헌신' 같은 가치는 좀비처럼 살아남았다. 회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라졌는데 상대적으로 사원들이 해야할 의무는 더 강화된 셈이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초등학교 때 '꿈=미래의 직업'이라는 도식부터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어릴 때부터 강조되는 '보람'이 결국 사축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나도 모르게 사축이 되지 않는 방법을 실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보람'을 강조하는 태도는 경영자의 마인드에서 매우 바람직하므로 뭘 선택하느냐는 독자의 책임이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안 풀리는 것이 당연하고, 회사는 그저 '거래처' 이상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마지막으로 싣고 싶은 말은.
'이제 힘들기도 힘들어, 지치는 것도 지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