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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에서 우주까지 - 이외수의 깨어있는 삶에 관한 이야기
이외수.하창수 지음 / 김영사 / 2016년 5월
평점 :
당나라의 선승 조주선사는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받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한다. 잣나무는 물론 이 물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이야기의 '화두'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정신, 심지어 답을 구하는 상대의 물음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후에 누군가가 이 물음에 대해 다시 한번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면, 그 사람은 내치리는 죽비를 피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정해진 답에 얽매인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외수는 말한다. '달마에겐 동서남북이 없습니다. 그가 우주의 중심이니까요.' 이 책은 우주의 중심인 달마, 혹은 이외수,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대담집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은 4가지로,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있다. 일부 과학자 중에는 이 중에서 '중력'을 근거로 새로운 차원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다른 세 힘에 비해 중력은 그 힘이 유난히 약하다. 그 힘이 유난히 약한 것은 그 이유가 바로 다른 차원까지 힘이 고르게 분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차원이라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없어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것이 왜 어려운지 이외수 선생님이 주로 이야기하는 누에의 상태를 예를 들어보자. 알일 때는 단순 점이고 1차원이다. 알이 깨어 누에가 되면 일직선상을 오갈 수 있는 2차원이 될 것이고, 나비가 된 후에는 앞뒤 뿐 아니라 위까지 갈 수 있는 3차원 공간에 있게 된다. 이 때 1차원의 알에게 2차원의 애벌레의 궤적은 알 수 없는 세상이고, 애벌레에게 3차원의 높이라는 개념은 상상할 수 없는 개념이다. 다만 나비가 눈앞에 있을 때 보였다가 날아가면 보이지 않고 다시 내려앉으면 보일 뿐이다. 애벌레에게 나비는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지만 나비는 그냥 한차원 더 높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차원의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것은, 이 책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고차원의 세계를 상상해야만 가능한 세계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외수의 책에는 자주 '선계'가 등장한다. '벽오금학도'에도 보면 어린 소년이 우연히 신계를 접한 후에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장수하늘소'에서도 유난히 햇볕을 좋아했던 주인공의 동생이 후에 신선이 되어 다른 세계로 떠났다는 줄거리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 소설을 읽을 때는 다소 터무니없는 결말에 조금 허탈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작가 자신이 정말로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강하게 믿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책 '먼지에서 우주까지'는 그런 생각을 가졌던 독자라면 작가가 '선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가 했던 이야기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의 이야기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의 차원이야기에서 보자면 우리는 나비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만 볼 수 있는 애벌레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것과 그 말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말이다. 여전히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 같은 현상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환각처럼 느껴지고, 다른 차원, UFO는 있으면 재미있겠지만 현실과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얻는 것이 있다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먼지'의 세계가 뭉치고 뭉쳐 물질을 구성하고 태산을 이루고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하고, 그 반대로 거시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 세계로까지 환원되는 동안의 과정이 나에게 생각거리를 준다는 점이다. 그 과정 속에는 그 모든 것이 단지 '형상'에 불과 하다는 것과, 보다 근원적인 '본성'은 어떠한 형태로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숨어들어 있다. 우리가 우주의 법칙을 알았으니 그것을 숭배하고 칭송하는 것이 아닌, 내가 곧 우주이고 나 자신이 중심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것에조차 얽매이지 않는 것이 깨달음의 근원이라는 메시지가 미세한 파동을 만든다.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본성을 터득한다는 겁니다. 현상에 머문 상태에서의 능력은 그 현상 하나만을 여는 열쇠를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성을 깨치는 것은 모든 현상을 여는 하나의 열쇠를 발견하는 일이죠. 이 열쇠를 갖게 되면 더 이상 현상에 얽매이지 않게 됩니다.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