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컬렉션 - 호암에서 리움까지, 삼성가의 수집과 국보 탄생기
이종선 지음 / 김영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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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수집하건 우선은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피규어든, 스타벅스 텀블러든, 하다 못해 어릴때 종종 했었던 우표 수집이든 경제력이 없으면 그들이 모은 것은 별 가치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국보급 문화재를 이야기 하려면서 좀 동떨어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어떤 컬렉션이든 재력이 곧 그 가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재력을 가진 이들은 항상 딜레마에 봉착한다. 초등학교 때 한 아이가 고생해 가면서 일년 동안 모은 희귀 우표를, 돈 많은 집 아이가 1개월만에 모아들였다면 어떨까. 1년여의 정성과 노력, 우표에 대한 열정을 돈으로 환산한 느낌이다. 간송 전형필이 온 평생을 들여 전재산을 털다시피해 고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에 비하자면, 재력있는 삼성가에서 문화재를 모으는 것은 열정이라기 보단 취미처럼 느껴진다. 


이야기의 시작을 그렇게 했다고 해서 '리 컬렉션'이 그저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삼성가가 여기저기 문화재를 한순간에 모아들였다는 소리는 아니다. 조금 관점을 달리 해서 이 책을 볼 때는 문화재 그 자체에 대한 누군가의 열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문화재 수집의 역사가 이건희 회장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커지고 내실을 갖추는 과정의 기록이다. 단순히 재벌가의 취미 사업이라고 하기엔 그 기간이 무척 길고, 단순히 닥치는 대로 사들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관점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 문화재들은 삼성가의 창고에 숨어있지 않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는 점도 그 성격을 달리 생각하게 한다. 더구나 이 책에 나와 있는 호암, 리움 박물관의 설립과정과 문화재 수집과정은 그저 부잣집 어르신들의 단순한 취미로 치부하기엔 그 열정과 정성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저자인 이종선 박물관장은 이병철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20여 년을 리 컬렉션을 실질적으로 관장해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이 이 부자의 관심과 추진력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사실상 시기상조라고 느껴지던 70년대에서부터 박물관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책으로 가보면 여러 문화재의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김일성이 문화재를 모으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조급해져서 실물도 보지 않고 구매를 결정했던 이암의 '화조구자도' 이야기, 단원의 편화들을 모아 구성한 리움컬렉션의 대표작품인 '절세보첩'과 관련된 이야기, '청화백자매죽문호'가 국보 제219호가 되기까지의 긴박하고 우연한 과정 등 여러 문화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적절히 흥미를 돋워준다. 


책의 말미에 가면 '간송 전형필'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실려 있다. 저자는 만약 간송이 상속받은 수십만 석지기의 재산을 문화재 수집과 보호에 쓰지 않고 사업에 사용 했다면 삼성 못지 않은 대기업이 탄생했을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사실 그 말은 삼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는 사람들의 심정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비록 책에 실려 있는 문화재에 대한 의도가 순수하다고 할지라도 대기업에서 모아들이는 작품들에 대한 선입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비교할 때 개선되기에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행복한 눈물'의 사건에서 봤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재벌가의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리움미술관의 많은 작품과 그 안에 숨겨진 크고작은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소 선입견을 거두고 작품 자체로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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