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동화로 만나는 사회학
박현희 지음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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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봤을 땐 좀 이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소리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의 교훈은 상대를 배려하라는 말인데 여우는 먼저 사과한 셈이라고 하지 않나,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 한 것은 심심해서이니 어른들 잘못이라고 하지 않나 왠지 이야기의 중심을 벗어난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왠지 내 스타일이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모두가 정해놓은 교훈을 따라갈때, '잠깐!!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하는게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나는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장담하건데 어떤 육아 서적보다 이 책이 아이들을 이해하는 관점을 보여주는 데는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세 개의 마을로 이뤄졌다. 제1장은 관용의 마을로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거나 살았지만 곤경에 처한' 여우와 두루미, 양치기 소년, 피노키오, 아기돼지 삼형제가 나온다.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논어의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건 남한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치자면 정말 '쩐다'. 그럼 여우나 두루미나 둘다 '쌍방과실' 일까. 여기는 큰 차이가 있다. 여우는 모르고 한 행동인데 두루미는 알고 일부러 엿 먹이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여우는 그저 생각일 짧아서 두루미를 배려 못한 것이지 일부러 골려 먹으려고 한건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서로 잘못한 것은 없는 셈 치면 된다는 생각을 경계한다. 거기에 강요된 화해는 얼마나 위험한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경우라면 그 말은 곧 피해자가 감수하고 가해자는 통 크게 웃어 넘기는 대인배가 되는 그림일 뿐이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에서 어떤 말을 할까. 우리는 왜 그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자꾸 하고 또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어른의 통제를 벗어난 아이를 보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도 어릴때 친구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우리 아빠는 다른건 안 때려도 거짓말 하는 건 절대 용서 안해' 이런 식의 말 말이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가 자신을 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그걸 발견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면서 거짓말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피노키오'가 왜 생겨 났는지는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내글링크 http://blog.yes24.com/document/6546572) 나는 피노키오야말로 어른들의 두려움과 욕망이 만들어낸 완벽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공부 안하면 잡혀가고,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져 들키고, 학교에 안가면 불에 타는 공포는 아이들에게 심어주기에 얼마나 완전한 교육자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2장은 일탈의 마을이다. 여기는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규범을 벗어 던진' 주인공 집합소이다. 거북이는 토끼가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이겼다. 이건 그렇다면 정당한 게임을 하지 않은 거북이가 잘못인가? 아님 어짜피 다시 하면 이길 수밖에 없는 토끼가 승자인가? 그런데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게임을 만든 제3자이다. 사실 이 게임은 승자가 토끼라면 당연한 것 승자가 거북이라면 대박인 게임이다. 토끼 입장에서는 할 이유가 없는 게임이지만 누군가는 부추겨서 게임을 성사시켰을 것이다. 토끼가 잠을 잤던 것은 이따위 말도 안되는 게임은 관심도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토끼가 그렇게 일탈하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게임은 게임 당사자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면 판도 커지지 않고 각자가 즐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데에 포인트가 있다. 


빨간모자는 엄마가 신신당부한 큰길을 벗어나 '샛길'이라는 일탈을 택한 캐릭터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여느 동화와 마찬가지로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살아나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훈훈한 결말로 끝난다. 저자는 모두 안정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샛길을 택했던 모든이들에게 사실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샛길로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야지 왜 우리는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것일까. 샛길 이야기는 '분홍신'에 가면 더 끔찍하고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검정신을 신을 수밖에 없는 아이가 분홍신을 꿈꾸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 미리 정해놓은 길로 인도하려는 기성세대에 대해 '죽을 때까지 춤출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지막 장은 지혜의 마을이다. 여기는 '우리가 사는 진짜 모습을 그려 보는' 장이다. 드디어 주인공 백설공주가 나온다. 그녀가 자꾸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문을 여는 이유는? 바로 외로웠기 때문이다. 난쟁이들은 낮동안 일하고 밥을 먹으면 이내 잠들고 공주는 말할 상대도 없이 또 하루를 살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들 문을 안 열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녀는 능동적으로 친구를 만들기에는 이미 수동적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그녀는 그저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왕자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마녀라고 할지라도 문을 열 땐 반가웠을 것이다. 반면에 왕비는 어땠을까. 왕비는 첫번째 부인의 자리를 꿰차기 위해 왕의 마음 속에서 끝없이 싸워야 하기 때문에 외모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를 인정해주는 거울이라는 존재는 -꼭 거울이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책의 일부만 적어볼려고 했는데도 내용이 꽤 된다. 이 책은 이런 식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교훈들에 대해서,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는지. 그 이면에는 피해자나 힘없는 약자가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학교 선생님이라 아이들의 욕구에 더 민감하고 귀를 잘 기울였는지는 모르겠다. 누구든 부모라면 이 책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을 것이다. 여러 관점도 아니고 주인공의 관점, 혹은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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