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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신은 위대하지 않다'고 자신있게 외치던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암에 걸렸을 때 종교인들은 이것이야말로 신의 복수라며 통쾌해했다. 이에 대해 그는 '복수심에 찬 신이 생각해 낼수 있는 것이 고작 나이와 생활방식으로 예측 가능한 '암'을 내려주는 것이라면, 그의 무기고는 슬플 정도로 비어 있는 것'이라며 독설을 내뱉는다. 죽을 때 말이 착해질 지도 모른다는 종교인들의 기대는 그가 남긴 마지막 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처절하게 무너진다. 주제 사라마구는 91년에 '예수복음'이라는 책으로 신의 아들 예수가 아닌 인간 예수를 집필한 바 있다. 그는 이 때문에 98년 노벨문학상 수상시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역시 생의 마지막에 가서는 종교에 귀의할지도 모른다는 일반적인 기대에 반하며, 오히려 생의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카인'을 썼다. 모든 철학자가 마지막에 쓰고 싶은 책은 종교 비판이라던 어느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카인'은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이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인물이다. 자기 동생 아벨을 죽여 최초의 살인자로 알려졌으며, 아벨의 행방을 묻는 여호와의 질문에 뻔뻔하게도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답한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은 여호와의 책임이며, 자신은 주를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아벨을 죽인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그것은 카인을 시험해본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에 카인은, '주께서 직접 창조한 것을 왜 시험한단 말입니까.'라며 울분을 토한다. 피조물의 의지가 신의 의지를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호와가 그 책임을 피조물에게 넘기려는 상황은 불가해하다. 신의 능력이 무한하여 이 일의 끝을 미리 알았다며, 우선은 시험하지 말아야 했을 것이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면 적어도 아벨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말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문이다. 카인은 첫번째 살인자이면서, 가장 억울한 존재로서 소설 내에서 신이 내리는 옹졸한 판결의 현장을 시공을 초월해 등장한다.
그 첫 장면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순간이다. 성경에서는 그의 경외함을 확인한 신이 이를 멈추게 하였지만, 소설에서는 카인이 등장해 이삭의 죽음을 지연시켜 살린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는다.
그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아들도 죽이라고 명령할까요.(p.98)
카인이 등장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지고, 이에 대한 방종이 가져올 무책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신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인간의 얕은 소견으로 볼때 지독히 불합리하다. 아브라함은 신의 시험을 통과해 화를 면했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순탄치 못하다. 소돔의 사람들은 동성애를 하고 타락했다는 이유로 도시가 절멸한 위기에 있다. 아브라함이 그 도시에 죄없는 사람이 열명만 돼도 도시를 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소돔은 불덩이를 맞고 사라진다. 적어도 죄없고 동성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열 명을 넘는 도시였겠지만 소돔은 사라진다. 카인은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노인장의 하나님일지는 모르나 그 사람들의 하나님은 아닌 거지요.'(p.117)
뒤에는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벌은 받은 인간들, 오직 신의 승리를 위해 죽어간 반대편 사람들, 오직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 온몸이 곪아 터지는 욥, 모든 생명체를 멸하기 위한 노아의 방주까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지전능' 함이 신의 기본 요소라면, 사건의 전후를 꿰뚫지 못하고 결과에 대해서 분노하고 이를 벌주는 신의 모습은 '전지'를 뺀 '전능'의 모습만 남은 신일 뿐이다. 옳은 판단이 결여된 '전능'의 무서움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소설 카인에서 신의 모습은 무한한 능력을 이용해 전횡을 저지르면서 책임조차 면하려는 실망스러운 존재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관용과 사랑'을 대표적 이미지로 차용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성경속 여호와의 모습은 독자에게 불공평하고 편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수없이 제기되었던 의문과 비판을 모아서 작가가 인생의 마지막 힘을 모아 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노아의 방주에 오른 카인은 천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면서, 완전무결함을 표방하지만 오류 투성인 신에 대한 비판을 마무리한다.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 나면, 그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