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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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생각이 좋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생각도, '멍하게 있을 때 가장 창의적'이라는 기발한 발상에도 기꺼이 동감한다. 우리는 마치 브레이크가 튕겨나간 사람들처럼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으면 속도에 날아가 버릴 지경이 되어버리려는 중이다. 바이올린도 켜지 않을 땐 현을 느슨하게 해야 하는 법인데, 우리는 쉬는 것이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감시하는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그럴 때 한번씩 나오는 김정운 교수의 책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토닥이며 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이번에 저자는 '외로워지라'고 말한다. 뭐 '아내와 결혼을 후회한다'라고까지 했던 발언의 강도에 비하자면 양호한 편이라고 봐야겠다. 


김정운 교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제목을 보고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 대충은 짐작할 것이다. 사실 우리 중에 격하게 외롭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연기할 뿐이지. 우리는 온 종일 내가 속한 대열에서 이탈할 것 같은 두려움, 매일 같이 군집에서 도태될 것 같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사실은 그 속에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도, 외롭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내가 '혼자'라는 사실만큼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토록 부정하고 싶더라도 실제는 외로운 것이라면 그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의 말은, 타인 혹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으므로, 이제는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운 것이 정상이라고 말하면서 그 현실을 즐겨보자는 말이다. 


이제 혼자가 되는 것을 인정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문제는 뭘까. 그것은 내가 혼자가 되었을 때 뭘 할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저자 또한 자신의 적성과 양심에 도무지 맞지 않는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가장 처음한 생각이 '이제 뭘하지?'였다. 우리는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벗어날 용기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다음에 뭘 할지에 대해서 선뜻 자신있는 답을 내기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저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하고 싶었던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에서 나온 그림은 전부 저자가 그린 것인데 그의 자유분방함과 에로틱함, 그리고 나름의 그림 실력이 어우러져서 꽤 괜찮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글도 기발하고 그림도 독창적이어서 미술은 모르지만 나름의 고유한 영역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현실에서 한 발 떨어지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나는 올해도 사이버 대학교의 어느 한 과를 서성이고 있다. 매번 생각은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마음에 포기만 했었던 공부인데도 여전히 과감한 결정은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지금의 직장이나 가정을 소홀하게 해야할 정도의 일이 아닌데도 매번 주저하게 된다. 더 우스운 사실은 그런 후에 당장 3~4년만 지나도 이 우유부단함을 후회할 것이란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그럴때 나는 더 우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도 현실을 쉽게 벗어날 순 없다. 다만 조금만 노력하며 스스로의 삶에 여유 공간을 줄 수는 있다. 그러니 저자는 격하게 외로워져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나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로, 무대 뒤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삶, 모든 것이 공개된 유리방 같은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가. 배후공간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만이 방법일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외로워지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 중년 사내들이 골프에 환장하는 이유가 어쩌면 열여덟번이나 새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농담처럼 들리지만 뭔가 찡한 느낌이 있다. 우리는 누구든 새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좀 더 여유있고, 좀 더 집중하고 열심히 하는 홀을 다음 번에야말로 해내겠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다음 홀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도 천천히 걸으면서 지난 번 홀을 상기한 덕분이고, 바둑을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승부를 끝내고 편한 마음으로 복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는 것도 격하게 외로운 순간에 스스로를 마주하면서 공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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