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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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진 철학자 탈레스를 보고 하녀가 비웃으면 말했다. 

"탈레스는 하늘의 것을 보는 데는 열심이면서 발치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장자'에 보면 제나라 환공과 윤편의 이야기가 이와 비슷하다.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이 환공에게 무슨 글을 보고 계시냐고 묻자 환공은 성인의 말씀이라고 한다. 윤편은 그들이 살아 있느냐고 묻고 환공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에 윤편은 '왕께서 읽는 것은 그저 찌꺼기입니다.'라고 말한다. 환공이 화를 내며 이유를 묻자. 

'수레바퀴 깎는 일마저도 많이 깎으면 헐거워지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는 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 자식에게도 이 일을 물려주지 못하고 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성인들 또한 핵심적 깨달음은 책에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철학이 철학적일 뿐이라면 철학은 영원히 철학 그 자체로 남을 수밖에 없다. 철학이 현실로 내려와 세상 바퀴의 굴대에 맞추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뜬구름 잡는 형이상학에 불과할 것이다. 철학을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책은 수도 없이 나온다. 그중에 가장 보편적인 스타일은 바로 일상이나 쉬운 주제에서 철학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철학자와 하녀'는 현장 인문학자인 저자가 유식한 철학이 아닌 일깨우는 철학을 위해 쓴것으로, '수유너머'라는 연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의 현장 철학이 짙게 배어나는 책이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다시 한번 철학적 눈으로 돌아보면서 철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 있는 것이 되어가는 지를 보여준다. 니체 전문가인 저자가 니체의 글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학자들의 글을 끌어와 현실을 재해석 하지만 어렵지 않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최근 노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연이 늘어나고 있다. 결과가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모르지만, 실제로 인문학 강의를 듣고 노숙자 생활을 접은 채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어떤 이유에선지 무척 궁금했다. 여태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시선을 나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 내 과거 내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나를 부끄러워 하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자세라는 것이다. 그런 자세를 갖게 된 사람이 여전히 길바닥에서 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어떤 철학자보다 더 깨달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가 그곳을 박차고 나와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다른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철학과 인문학이 누군가에게 유성처럼 박히는 경험이 된다는 것은 철학하는 사람에게나 본인에게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다.  


책의 서문에는 노들장애인 야간학교 엠티 중에 한 학생이 별을 보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뻔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것은 어떤 천문학자나 철학자가 본 별보다 아릅답고 완벽한 존재로서의'별'이었다. 그 학생은 그 별을 보고 그녀가 살아야 할 방향을 다시 깨달았다. 저자는 철학이 바로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보거나 듣고 정신을 확 깨뜨리며 스스로를 다그칠 수 있는 것,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 안에 꽁꽁 얼어있는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같은 철학이 진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이 철학자의 것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생에 쫓기면서 책 한권 읽을 여유 없는 사람들에게 각성하라고만 쓴 책은 아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철학이 없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불편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위정자나 리더계층에서 철학이 없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직 시키는 일이니 했다는 '아이히만' 같은 이에게 없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제목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저항하는 존재는 말소되지 않는다', '바로 잡아주는 사람과 깨뜨려주는 사람', '천국에는 철학이 없다' 등등이다. 나는 특히 마지막 순간에 다들 용서하는 선한 이들과 달리 루쉰이 '죽음'이라는 잡문에서 남긴 글귀가 맘에 들었다. '멋대로 원망하도록 하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 만큼 스스로의 삶에 당당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종국에 가서는 타협하고 인정하면서 좋은게 좋은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당당한 자세가 특히 지금 우리에겐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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