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진영에 비록 싸움을 잘하는 관우와 장비는 있었지만 지략가가 없어서 이렇다할 성과를 올리지 못할 때 큰 활약을 해서 조조를 괴롭힌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서서()'라는 인물이다. 나는 특히 이 인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의 삶이 너무나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데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그렇다. 

 

조조는 서서를 유비 진영에서 끌어내기 위해 모사 정욱의 계략을 이용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서서 어머니 위부인에게 아들이 조조의 진영으로 왔으면 한다고 서신을 보내게 하려 했다. 그러나 학식이 높은 위부인이 거부하자 정욱은 한 가지 계책을 낸다. 바로 위부인의 필체를 흉내내어 서서에게 편지를 써서 조조의 진영으로 오게 하는 것이다. 특히나, 효성이 깊었던 서서는 어머니의 편지 때문에 조조의 진영으로 가지만, 이는 조조의 계략이었음을 뒤늦게 알고 크게 후회한다. (서서는 조조의 진영에서는 단 한번의 계략도 내지 않았다)

 

이 일을 두고 서서의 어머니는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 

하고 하며 크게 한탄하며 자결하고 만다. 

 

====================================================


이 이야기는 결국 그녀가 글을 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성이 글을 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는 어떤 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였다고 하더라도 자결하는 순간에는 차라리 내가 글을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후회를 했을 것이다. 


지식을 아는 것이 때로는 짐이 될 때가 있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지식들이 많다. 지식의 딜레마는 배운 후에는 배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지식은 우리 삶에 끼어들어 어떤 것에도 순순히 응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을 강요한다. 심지어 과거에 편하게 받아 들였던 일상까지도 물음표를 들이대며 다시 반성하도록 우리를 압박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른는 삶으로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누구든 그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습득하는 지식과 정보는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 삶을 옥죄기 마련이지만, 우리 삶은 그러는 중에 더 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임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만이 지식이 삶의 자양분으로 가치를 갖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