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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바람이 숨을 죽였으나 허벅지 깊이로 쌓인 눈이 크로프의 전진을 방해했다. 그럼에도 크로프는 눈발을 헤치고 계속 저돌적으로 밀어붙임 끝에 오후 2시경에는 사우스 서미트 바로 아래인 8,748미터 지점에 이르렀다. 이제 60분만 더 오르면 정상인데 그는 더 올라갈 경우에는 너무 지쳐 안전하게 하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아깝게도 거기서 돌아서기로 결정했다.
5월6일, 크로프가 제2캠프 곁을 지나 산 아래로 터덜거리고 내려갈 때 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 정도로 정상 가까이 접근한 상태에서 돌아선다는 건... 크로프 같이 젊은 사람으로서는 참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단히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예요. 난 그 사람이 계속 더 올라가 정상을 밟았다 해도 이보다 더 감동스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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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8미터에서 8748미터를 오르고 정상에 가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기'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산소의 양이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어린이 수준의 사고 밖에 할 수 없는 그곳에서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요.
정상에 오른 것보다 더 감동스럽다고 말한 홀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가 그 순간 정상에 올랐다면 어쩌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 등정이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절제'로 인해 그는 앞으로의 인생에 몇 번은 더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항상 욕심과 현실의 저울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