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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아메리카 - 미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대에 대한 비공식 기록
F. L. 알렌 지음, 박진빈 옮김 / 앨피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 가운데 하나는 전쟁만큼 문명의 흐름을 일거에 바꾼 거대한 사건은 없다는 점이다. 패자라면 전쟁의 타격이 심히 크겠지만 승자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남의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면. 많은 미국인들이 20세기 미국 역사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을 1920년대와 1950년대로 회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1920년대 미국의 모습은 어떨까. 라디오가 보급되고 유성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대중오락이 본격적으로 막을 연 시대.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교외로 몰려가기 시작했고, 광고의 활성화로 본격 소비문화가 개막한 시대. 스포츠 스타가 전 국민의 페이보릿이 된 시대. 금주법 시행으로 알 카포네 같은 악당이 활개를 친 시대. 어쨌든 1920년대는 미국식 낙관주의가 뿌리를 내린 시대이자 미국이 오늘날 초강대국으로 오르는 발판이 마련된 시대다. 이 책은 1918년 11월 1차대전이 끝나고 1929년 11월 월가의 주가 대폭락으로 대공황이 시작되기까지 11년간의 미국 사회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자는 여기서 저널리즘의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정치, 경제 같은 거대한 이슈들도 물론 다루지만 그가 진정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책을 읽었으며, 어떤 놀이를 했을까. 이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는 무엇이 있었고, 사람들은 여기에 어떤 식으로 반응했을까. 그 결과 이 책은 지나간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둔 책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원더풀 아메리카>를 읽는 의미는 단지 남의 나라 미국의 과거를 회상하는 데만 있지 않다. 1920년대 미국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중사회의 시발점이 된 시대이기도 하다. 이때에 이르러 대중매체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하나의 현상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도시 집중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 개발 붐이 일었고 고층 빌딩 건설이 시작되었다.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고, 공동주택의 보급으로 여성이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여 세대간 갈등이 처음으로 표면화되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아무런 반발과 규제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볼셰비키의 위세에 공포를 느낀 보수 정치인들은 빨갱이 사냥을 했고, 근본주의자들은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걸었으며, 지식인들은 과도한 소비문화에 경계심을 보였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이러한 활황은 주가 폭락으로 제동이 걸리면서 한 호흡 쉬어가게 된다.
흥미진진한 시대를 생동감 있게 담아낸 이 책의 놀라운 점은 1931년에 초판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미 그때 저자는 지난 1920년대가 특별한 시대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의 관찰과 언어가 유효하다는 사실은 그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그 시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과 그렇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