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팝니다 -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반문화 혁명은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바꾸어놓았을까, 아니면 세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을까? 캐나다 출신의 두 소장 철학자가 쓴 이 책은 반문화의 오랜 신화에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반문화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면 대중사회 비판이라고 풀어서 이해해보자. 흔히들 대중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미지 하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TV와 영화를 보고, 똑같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을 떠올린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반문화가 우리에게 주입한 이미지다. 반문화는 자본주의의 억압적이고 순응적인 기제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발성과 자유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일체의 운동을 말한다.

저자들이 반문화 운동의 예로 드는 것은 많다. 히피, 펑크, 생태주의 환경운동가, 대체의학론자, 기술비판론자, 반세계화 운동 등. 이런 운동은 20세기 후반에 특히 미국에서 득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나치의 파시즘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프로이트는 문명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을 억압한 기초 위에 건설된 것으로 보았고, 홀로코스트는 계몽주의를 시발점으로 하는 서구 문명의 비극적 정점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대안은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문화 운동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과연 그들의 바람대로 자본과 체제의 위세가 누그러들고 사람들은 보다 많은 자유를 얻게 되었는가?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다. SUV, 유기농 식품, 채식주의, 요가, 이국풍물 관광, 스케이트보드 등 특권적인 소비를 부추겼을 뿐이고 사람들은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버거운 삶을 산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것은 반문화가 궁극적으로 구별을 미덕으로 삼으며, 구별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적인 소비로 내몰기 때문이다. 즉, 반문화 운동은 남들과 다르게 살도록 부추겼고, 결국 사람들은 한정된 지위 재화를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따라서 반문화야말로 소비주의의 주범인 셈이다.

반문화 운동의 더 큰 문제는 이상주의에 빠져 일상의 정치를 소외시켰다는 점이다. 조직과 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조직이 주는 이점을 놓치고 조직의 효율적인 이용 방안을 등한시한 것이야말로 반문화의 가장 큰 실책이라는 진단이다. 반문화 운동은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고 개인의 자발성과 헌신에 기초한 이상적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도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제도가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더 낫고, 힘없는 정부를 만들기보다는 정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더 낫다고. 이들은 정치, 공동체 가치, 사회적 연대 등 '공적' 영역이 소비문화와 개인의 표현 같은 '사적' 영역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고급한 개인주의를 추구하느니 차라리 소모적인 경쟁을 포기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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