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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어린아이, 인간 - 인간은 어떻게 유아화되었는가
클라이브 브롬홀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이 왜 여태 화제가 되지 못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처음 책을 잡는 순간부터 거대한 비밀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화생물학자는 마치 추리 소설에 나오는 범죄 현장의 탐정과 같다. 주어진 것은 한정된 단서와 현재 상황뿐, 상상력을 가동하여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재구성해야 한다.
이 책에서 풀어야 할 질문은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점이다. 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났으며, 그럼에도 어떻게 하여 세상의 주인이 되었을까? 저자는 그 비밀의 열쇠를 유아화에서 찾는다. 인간의 외양이 침팬지 새끼와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유인원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늦은 것으로 인간의 독특한 특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 원인과 결과의 설명은 말끔하다. 의식의 탄생과 성적 일탈들을 설명하는 대목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으며, 남녀와 인종의 차이를 유아화의 정도와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 또한 참신하다.
자연과학이 커다란 틀을 만들고 나면 이제 디테일을 채우는 것은 인문과학의 몫이다. 인간이라는 종의 기본적인 조건이 설명되면, 개인별 사회별 차이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흥미로운 일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말미에 굳이 인간을 몇몇 유형으로 나누어 영양가 없는 분석을 하기보다 차후의 문제들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가령 이런 질문들이다. 유아화가 계속 진행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비단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것은 동성애 문제만이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풍조도 있는데 이것은 유아화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유아들에게서 보이는 무분별한 폭력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자살이라는 문제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쟁은 유아화에 저항하려는 시도일까, 아니면 유아화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인가? 등등.
아무튼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의 특별함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책임에 분명하다. 특히 영화 <나쁜 교육>에서 가톨릭 신부와 동성애의 관계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또 <M. 버터플라이>에서 대체 남자를 여자로 오인하는 것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었던 사람이라면 필히 이 책을 읽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