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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니니 - 세기의 마에스트로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이덕희 지음 / 을유문화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음악사에서 토스카니니에 대한 평가는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낭만주의 시대의 잔재인 주관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을 추구했다는 점, 그리고 본격적인 클래식 시장의 가능성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새로운 해석 경향과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는 선구자적 면모를 보여준 인물인데, 이것이 현 클래식 음악의 상황과도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볼 때, 그를 최초의 '현대적' 지휘자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후자의 산업적, 문화적 측면이 누락되어 있고, 주로 유럽 시절에 초점을 맞춰 토스카니니의 삶과 음악을 순차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무난하면서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인데, 오페라 공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파시즘 정권과의 불화는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말년을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면서 남긴 수많은 레코딩(그리고 라디오 중계 연주회)이 기록적인 판매고(그리고 청취율)를 기록하고 미국 일반 대중들의 문화적 삶을 바꿔버린 사실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작 토스카니니 본인은 레코딩 매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스튜디오에서 종종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그의 오케스트라의 독특한 음향이 오히려 당대의 기술적 수준과 절묘하게 어울려 극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레코딩과 관련된 이야기는 '테크놀로지와 음악'의 관계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또한 카라얀과 번스타인으로 이어지면서 완연한 클래식 음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시각으로 볼 때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그것은 토스카니니 자체가 워낙 인간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이었고, 격동의 시대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었던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과도한 애정으로 거리두기에 실패해 위태로운 순간들이 종종 있지만, 매력적인 주인공과 혼란의 시대라는 전형적인 전기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이 책은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인물을 통해 음악과 삶의 흥미로운 이중주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반부의 다소 모범적이고 편향적인 서술은 후반부에 수록된 초트치노프의 회고록에 의해 절묘하게 균형이 잡힌다. 오히려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들려주는 글이 토스카니니의 인간적인(불완전한) 매력을 느끼기에는 훨씬 낫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렇게 절반 정도가 번역 자료로 채워진 책에 저술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가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