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
이성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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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기억 속의 1990년대 중반은 누가 뭐래도 대중 문화의 시대였다. 비단 대중 문화의 양과 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그것이 담론의 대상이 되면서 명망을 누리게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중 문화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매체가 단연 인터넷이지만, 당시만 해도 잡지가 모든 담론의 진원지였다. 그 가운데서도 <리뷰>와 <키노>는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양대 바이블이었다.

그때 나는 한창 음악에 몰입했던 시기였으므로 <리뷰>에서 가장 먼저 찾는 페이지는 강헌과 임진모가 전도하는 '록 스피릿' 담론이었지만, 그 외에도 리뷰 코너 말미에 첨부된 각종 계보도와 흥미진진한 스포츠 담론, 그리고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X-사전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이성욱의 글도 그렇게 <리뷰>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그의 글은 당시 내게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다른 필자들이 자신이 다루는 대상을 요리조리 재면서 어떻게 관념의 틀을 씌울까 고민했다면, 그의 글은 그저 추억을 주절주절 토로하는 만담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경탄했던 점은 비상한 기억력 정도였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그는 망자가 되었고, 그가 남긴 글들은 이렇게 유고집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옛날 글들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신기하게도(혹은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가 추억하는 6,70년대가 아니라 기대와 흥분으로 넘쳤던 90년대 중반의 상황이다. 당시 그렇게 발랄하고 날카로운 필력을 과시했던 이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항상 이런 추억의 노스탤지어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해서 그의 글은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시려오는 서글픔을 동반한다.

90년대를 추억하는 자들이나 60년대 대중 문화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책을 읽고 당대의 대중적 기억이 남긴 발자취를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은 체질적으로 자유로운 에세이일 때 빛을 발하고, 여전히 놀라운 것은 그의 육체 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무지막지한 기억력이다. 대신 그가 기억해내는 옛 추억을 비판적 거리를 두고 대상화하려 할 때 그의 장점은 다소 빛을 잃는다. 그것은 마치 대중 문화의 통속성과 담론의 엄숙성 사이의 거리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보다 명료하고 냉철하고 분석적인 언어로 과거를 정리한 글을 원하는 사람(나를 포함)에게는 그의 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덧붙여 - 간만에 읽은 그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경한 그의 문장 스타일과 단어 선택이었다(아마 문학을 전공한 때문인 듯). 요즘은 구어체와 문어체, 고어와 은어, 외국어와 한자어가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뒤섞인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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