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 전 이런 저런 정보들을 통해 그려본 책에 대한 인상이 책을 읽은 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그 어긋남을 즐기는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일텐데 <비트겐슈타인은 왜?>는 기대치가 정확히 충족되는 보기 드문 책이다. 케임브리지의 한 강의실에서 우발적으로 터진 사건의 전모를 추리해 가는 소설 형식의 이 논픽션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고 개성적인 두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다각도로 흥미진진하게 복원해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먼저 소재의 참신함에서 찾을 수 있다. 악마적이고 신비한 카리스마의 몽상가 비트겐슈타인과 야망과 콤플렉스로 무장한 실리적 철학자 포퍼. 이들은 성격은 물론 집안의 차이에서부터 빈 학파와 러셀을 둘러싼 학문적 지향에 이르기까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던 인물이다. 이런 대조적인 두 주인공의 충돌을 설명하기 위해 개인의 차이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을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이다. 20세기 초 빈의 풍경과 나치 시대의 유럽 사회, 케임브리지의 학풍 등이 그 날의 사건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소상히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효과적으로 부각시켜 독서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마지막 장점은 좋은 번역과 적절한 역주, 무엇보다 읽기 편한 편집이다. 독자로서 당연한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책이 의외로 드물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부담스러운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내면서도 지적 수준을 잃지 않는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영미 철학의 사상적 배경의 입문서로 여겨도 좋고, 유럽의 지성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로도 손색이 없으며, 혹은 두 철학자의 정신 분석 텍스트로도 흥미롭다. 비트겐슈타인의 개성을 독창적으로 조합해낸 텍스트로는 영국의 영화 감독 데릭 자만의 <비트겐슈타인>을 보는 것도 좋겠다. 난 이제 필립 커의 <철학적 탐구>를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