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 COOL
딕 파운틴.데이비드 로빈스 지음, 이동연 옮김 / 사람과책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가 대문자 쿨의 발자취를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원래 쿨은 서아프리카의 요루바 족에서 기원한 것으로 노예무역 항로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흑인들이 인종차별과 박해에 대해 '자존심'을 지키는 수동적 저항의 수단이 되었다. 1950년대 무렵, 백인들도 이런 쿨에 매료되기 시작했고, 이후 청년 하위문화와 연관되면서 쿨의 급속한 보급이 이뤄졌다. 1980년대에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상업주의에 의해 소비사회의 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역사적 설명에 논리적인 살을 붙이는 작업은 소홀히 하고 있다. 특히 위의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흑인들의 문화가 백인들에 의해 재발견되는 과정인데,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빠져있다. 대신 저자들은 쿨의 표면적인 현상에 집착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쿨의 외연이 무한히 확장되고, 결국 이것도 쿨, 저것도 쿨로 설명되면서 쿨의 역사가 하위문화의 역사, 아방가르드의 역사, 유행의 역사와 상당부분 겹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또한 책의 곳곳에 산재해있는 쿨의 특징들도 종종 일관되지 않고 모순을 보이며, 이들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억지스러운 면면들이 보인다. 예컨대 쿨의 대립항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청교도 윤리를 설정하다보니, 바로크 문화도 쿨이 되고 갱스터 랩도 쿨이 되는 이상한 논리가 되고 만다. 쿨의 특징으로 개인주의, 쾌락주의를 설정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거론하는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르네상스의 스프레차투라를 쿨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예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학문적으로 기획된 책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표면에 보이는 현상들 배후에 있는 체계와 논리를 가려내고, 그에 따라 현상들을 위치 지우는 일이다(단순히 현상들을 지적하는 일이라면 패셔너블한 잡지들이 훨씬 잘 하지 않겠는가). 특히 쿨처럼 마구잡이식으로 남용되기 쉬운 개념일 경우 이런 작업이 더 필요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쉬움이 많다.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쿨을 남성 중심의 쾌락주의라는 논리로 설명한 섹슈얼리티 부문은 참신한 대목이며, 네오나치즘, 악마숭배, 총기난동과 거리를 둠으로써 쿨이 하위문화적 결속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경계한 것도 명민한 지적이다(그런데 이런 것들도 진정 쿨에 속하는가 하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쿨을 포괄적인 문화적 범주로 규정하려는 '최초의' 이론적 시도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최초라는 데서 책의 가치를 찾아야한다는 점이 이 책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