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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반지의 제왕 읽기
그레고리 베스헴 외 지음, 최연순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의 컨셉은 흥미로웠으나 그 결과는 실망이다. 텍스트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책을 다시 들춰보게 하는 힘도 없고,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들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도 부족하다. 그나마 1부의 '반지'(그리고 니체의 초인의 관점에서 풀어쓴 장)가 가장 읽을 만할 뿐, 갈수록 논의가 피상적이고 진부한 수준에 머문다. 내가 기대한 것은 진지한 철학적 담론이었는데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도덕에 관한 에세이를 읽은 것 같다.
물론 '반지의 제왕'이 극히 현대적인 텍스트인 '매트릭스'와 달리 비평을 생산해내는 힘이 다소 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의 '반지의 제왕' 열풍이 철학적 메시지보다 블록버스터의 외양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도 인정하자.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의 해석대로 그렇게 모더니즘에 반대적이고, 도덕적으로 순결한 텍스트에 머물러있는 것 같진 않다. 비판적이기보다 찬양 일변도로 흐르는 관점이 못내 거슬린다. 그리고 군데군데 드러나는 미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도 영 불편하며, 번역기로 돌린 듯 시종일관 직역을 고집하는 번역투도 불친절하다.
이 모두는, 소설이 발표된 지 이미 5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아쉽다. 도전적인 문제제기, 당돌한 해석, 경합하는 논쟁, 깊이 있는 논의, 그리고 욕심을 내자면 텍스트가 가진 이데올로기의 측면과 수용사의 측면을 두루 포괄하는 안목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