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월드라니, 몇년만인가. 직장생활 초년도에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는 여동생이 표를 얻어줘서 여의도 중소기업 전시회장에서 할 때 가본게 벌써 몇년전인가.
작년에 가르친 학생들 중 몇몇과 1학기말 고사 석차가 오르면 코믹월드에 데려가주기로 약속했었는데, 3명이 석차가 올랐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첨엔 토요일날 가자고 했는데, 애들이 일요일날 가자고 해서 바꿨다, 바꾸길 잘했다. 어제 비오고 사람 많고 북새통이었나보다. 오늘은 비교적 날씨도 좋은 편이었고, 어제의 난리통에 교훈을 얻었는지 입장객 정리 정돈 등이 생각보다는 괜찮은 편이었다. 사람 많은 거야, 그런 행사가서 사람 많은 거 당연한 거 아닌가.
서울 강남은 고속버스로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이건만, 아이들은 아침부터 흥분해서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터미널에 나와있었다. [서울 애들은 깔끔하고도 세련되게 옷 입는다면서요][저 버스오래타면 멀미하는데...][팬시 상품 많이 사려고 모아둔 돈 다 가져왔어요~]하며 재잘재잘. 지하철 안에서부터, 한눈에 코믹월드 참가자 일행임을 알 수 있는, 각종 코스튬 플레이용 도구들을 든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의 흥분도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매표소 앞의 줄은 건물을 뺑 둘러 건물 뒤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주위를 지나가는 코스플레이어들을 보며 '저거 누구야!'하고 수다떠는 사이에 30분은 금방 흘러 드디어 입장. 커다란 배낭을 매고 온 한 녀석이, 실은 어젯밤에 서둘러 코스플레 의상을 만들어왔다며 탈의실부터 가야한단다. 녀석이 준비한 의상은 [하레와 구]에 나오는 의상. 주황색 천을 두르고 슬리퍼만 신으면 되는 초간단 의상이다. 그런데 170cm나되는 키의 녀석에겐 솔직히 안어울렸다-_-;; 5시간은 봐야한다는 아이들에게, 3시간만 보고 2시에 집합!을 외쳤는데, 3시간이 정말로 금방 갔다. 이제 만화에 대한-특히 '요즘' 만화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은 나도 이런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난 도중에 샌드위치와 음료라도 사먹으며 돌아다녔지만, 아이들은 물 한방울 안 마시고 돌아다니다 왔다. 사실은 음료수 사먹을 돈 조차 탈탈 털어서 팬시와 회지를 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팬시 상품들은, 작은 코팅 책갈피에서 쇼핑백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질이 엄청나게 발달해있었다. 아마추어 동인의 틀을 벗어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품질의 상품들도 보였다. 이러니 애들이 정신을 못차리지. '음료수 하나만 사주세요~'하면서도 학교 가서 자랑할 생각에 빠진 애들...코스플레 무대행사 시간이 가까와질 수록 다양한 의상의 코스플레이어들이 늘어났지만, 지치고 배고프고 목말라하는 녀석들에게는 금강산도 식후경. 코스플레 무대 행사도 볼 만하겠지만, 그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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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서울코믹
위 사진은 오늘 내가 입수한 물건들. 가능한 창작 회지를 사주자는 게 나의 기본 방침이지만, 3권 산 회지 중에서 [강철의 연금술사]패러디 회지가 젤 읽을 만 했다. 그냥 [테니스의 왕자] 패러디 회지도 하나 살걸. 그거 원작보다 더 그림 예쁘게 그렸던데, 쩝. 애들이 8월에도 가자고 성환데, 못 이기는 척하고 또 가? 판매전이나 코스플레는 들은 대로 [테니스의 왕자]랑 [강철의 연금술사]가 강세였지만, 기대보다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건담0079]회지도 있었다. 근데, 요즘 아들이 이걸 알까? 그리고, 1만5천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들었다 내려놓긴 했지만, 2차대전을 무대로 한 올컬러판 만화도 한권 있었다. 그건 준 프로의 작품같았다. 그리고 또 [마리미테] 문고판에 끼워놓으려고 홍장미와 백장미 커플 팬시도 하나씩 사고, 동생 주려고 [보노보노]브로치도 샀다. [마리미테]그림을 본 애들 왈, "샘~ 이런 건 남자향 아녀요? 샘 취향이 이런 거여요?" 도대체 남자향 취향이라는 건 어떤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