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한번도 해외에 나가지 못했다. 1993년부터는 해마다 적어도 1번씩 국제선 비행기를 탔던 나로서는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든다. 해마다 적어도 한번은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내가 써놓고도 감개무량하다.1993년 봄까지도 내 생전에 몇번이나 해외에 나가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었는데, 참 많이 컸다.
신정 휴가때 부모님댁에 가서 여동생의 일본 체류 일기를 발견. 동생도 어학연수니 출장이니해서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학생때는 그때마다 일기를 쓴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반성하고, 기억과 사진을 더듬어 기록을 남기기로 마음먹음. 생각날 때마다 끄적일거라서 얼마나 완성도가 높을지는 모르겠지만.
첫 여행은 오사카-나라-교토-토쿄로 이어지는 알짜 코스였다. 모 항공회사에 근무하셔 외국체재 경험이 많은 사촌형부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의외로 너희 둘이서만 어떻게 배낭만 짊어지고 외국을 간단 말이냐, 돈이 들더라도 좋은 패키지 투어를 해라!라고 하신 바람에 얼떨결에 부모님 원조로 호텔팩으로 가게되었다.
여행코스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특히 할 말이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라면, 당시는 관서국제공항이 생기기 전이라 지금의 이타미공항으로해서 오사카에 도착했는데,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면서 오사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던 거. 특히 오사카 성이 보였을때, 여기가 일본이구나하고 두근두근했던 거.
이타미 공항의 기내식 케이터링 센터에서 먹은 첫 일본음식인 도시락. 승객용 좌석이 높이 위치한 관광버스. 뒷 좌석이 응접실처럼 배치된 살롱 버스. 오사카 카이유칸의 수달. 수달을 보고 [귀여워~]를 외치던 미니 교복 치마 차림의 여학생들. 오사카의 뜨거운 여름 태양. 친절히 길을 얄려주던 키모노 차림의 교토 할머니. 전차를 타보려고 무작정 헤매던 우리에게 수줍게 길을 가르쳐주던 교토의 참한 여학생. 은각사 앞에서 먹었던 달콤한 국물맛의 우동. 교토 로열 호텔의 서양인들이 넘쳐나던 아침식사 풍경. 도쿄 그랜드 팔레스 호텔(DJ가 납치되었던 그 호텔) 주변의 조용한 거리. 칸다의 서점거리...
그 첫 여행은 투자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고 할까. 나의 일본어도 통하는구나, 외국이라고 별 거 아니구나, 물건너 낯선 땅이라고 미아되는 법은 없구나..등등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또한 나와 동생은 그 후 일본어를 바탕으로 먹고살게 되기에 이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