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의 유명한 단편인 [벚꽃정원]도, 그 단편을 각색한 유명한 무대극 [벚꽃정원]도 아니다.
물론 체호프의 무대극이 등장하긴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요시다 아키미의 단편만화인 [벚꽃 정원]과 그 만화를 각색한 나카하라 준 감독의 영화 [벚꽃 정원].

                                                   
만화[벚꽃정원]                  

 

 

 

                                    

아마 일요일밤의 NHK종합방송 심야명작영화방송시간이었을 거다. 영화 [벚꽃정원]이 방송시간표에 올라와 있던 건. 1990년에 잡지에서 신작영화소개를 봤을 때부터 묘하게 신경쓰이던 영화였다. 원작은 [바나나피쉬]로 유명한 요시다 아키미의 단편만화. 벚꽃동산에 위치한 사립여자고등학교의 연극부에선 해마다 벚꽃이 만발한 무렵, 개교기념일 행사로 연극 [벚꽃동산]을 무대에 올린다. 이야기는 그 연극을 공연하는 연극부 소녀들의 이야기.
원작만화에 대한 평가가 높고, 영화는 동경대 출신인 남자감독이 여자고등학교에 품은 환상을 그려냈다는 둥의 평도 있지만, 영화가 발표된 해의 일본영화아카데미상을 다수 수상했다. 영화잡지 [키네마순보]가 뽑은 그 해의 베스트 일본영화1위에도 뽑혔다. 감독의 환상이 그려낸 세계면 또 어쩌랴. 그 세계가 너무나 환상적으로 잘 그려졌는걸. 오디션을 통해 모집한 스무명남짓한 신인여배우들이 이 영화를 계기로 활약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한다. 
영화는 연극공연 당일날 아침부터 연극의 막이 오르기 직전까지 2시간이 채 못되는 시간을 리얼타임으로 보여준다. 모범생인 연극부장은 퍼머 머리로 나타나고, 화자격인 후배연극부원은 남자와 밤을 보낸 다음에 학교에 나타나고, 연극의 주인공은 처음하는 여자역을 이제와서 못하겠다고 하고, 또 다른 부원은 담배피우다 들켜서 징계대상이 되어서 연극에 못 나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검은 세일러복에 몸을 감싼 소녀들, 텅빈 이른 아침의 학교, 어디선가 스며든 한줄기 아침햇살 속에서 먼지가 떠도는 연극연습실...그런 풍경에 흐르는 쇼팽의 피아노곡...
영화가 너무나 꿈같았기 때문에, 오히려 만화원작을 보고선 실망했었다. 바나나피쉬 중반에서부터야 그림체가 좀 샤프해지지만, 바바나피쉬 초반에만 해도 얼마나  투박한 그림체였던가. 그 그림체로 여고생을 그려놓았다고 상상해보라.
마찬가지로 요시다 아키미의 원작만화를 각색한 영화 [러버스 키스]를 보다가 떠오른 영화다. [러버스 키스]는 원작이 단연코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벚꽃정원-Sakurano Sono]는 영화의 여운이 아직도 잔잔히 남아있다. 

 
사진활영장면

이 사진은 조연인 하녀로 분장한 연극부장 유우코(오른쪽)와 여주인공으로 분한 보이쉬 걸 치요코가 개막을 앞두고 셀프카메라로 둘만의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 소녀영화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 키도 크고 머리칼도 짧고 보이쉬한 치요코에게 옅은 연심을 품고 있는 유우코. 셔터가 몇번 눌러질 때마다 나란히 도구상자에 걸터앉은 두 사람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걸 보여준다. 두근두근이다! (실제 여학교는 전혀 이렇지 않다고? 그래, 나도 안다, 알아. 여학교 다녔고, 지금은 여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도 지금은 몽둥이들고 애들 잡으러 뛰어다닌다. 하지만, 그런 건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젖혀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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