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과학기술
김명진 엮고지음 / 잉걸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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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과학은 산업과 같은 자리에 놓일 때가 많다. 자연의 법칙을 밝히는 과학과 자연을 가공하는 산업이 결합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산업혁명 초기에 증기기관의 도래가 이룩한 것은 단순히 교통의 발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온 시간과 거리라는 개념을 흔들어버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 근대인들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움직이는 일이 불과 몇 시간으로 줄어드는 희안한 체험에 혀를 내둘렀을 터이다. 그것도 말이 아닌 쇳덩이로(!)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증기가 가진 힘의 원리를 연구한 과학과 그것을 쇠통에 담아 피스톤으로 연결시킨 산업의 결합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해 상세한 해설과 다양한 용례를 통해 과학기술이 가진 일상적인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어느 쪽이냐면, 과학기술의 순수한 영역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릇된 취급을 받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논쟁적인 책이다. 특히 제목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대중(성)과 과학기술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지 살피는 한편 미래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자리매김돼야 하는지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 실린 글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정의와 대중의 이해에 대한 논의들로서 과학기술이 전문가 집단인 과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어지는 2부는 과학기술 논쟁에 대한 것으로서 정치적·도덕적으로 과학기술을 검증하고자 했던 여러 논쟁의 역사가 소개되고 있다.

3부는 영화와 대중문화 속에 그려지는 과학기술과 과학자의 이미지에 대한 분석이 담겼는데,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왜곡되어온 과학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다. 4부와 5부에서는 과학기술의 논쟁적인 부분들, 즉 현대의학이 인간 복지를 '진정으로' 향상시켰는지 등등이 다뤄진 후 앞으로의 과학기술, 그리고 과학기술의 민주화에 대한 전망이 조심스레 꺼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을 통해 삶은 좀더 자유로워지고 윤택해진다. 대중이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한 것도 알고 보면 그 '자유'와 '풍요'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치적인 함의 같은 올바른 이해에는 게으른 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 역시 대중이 과학을 등한시하는 이유가 된다. 안전과 환경, 권력과 효용 등을 따지는 것 못지않게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공감대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쉽사리 핵의 유해성을 논하지만 자신이 사는 나라의 발전량 70퍼센트가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지는 모른다. 그런 식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과학기술의 민주화에 대한 다양한 제언은 그러므로 다소 시기 상조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과학기술의 다양한 의미를 이야기할 만한 공간 마련이 시급하다고 보면 이러한 '시기 상조'는 많아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증기기차가 처음 운행하던 무렵, 들판에 있던 많은 농부들이 쉭쉭거리며 움직이는 쇳덩이를 바라보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그들에게 그것은 그저 '쇳덩이'였을 것이다. 나 역시 과학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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