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44
남진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진우 시의 핵심은 거칠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동경에 있다. 그것은 시간이나 아름다움처럼 형이상적 소재를 향하기도 하고, 단순히 일상에서 얻는 의미나 예술작품이 가져다준 새로움 같은 데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에 대해, 여기 있다고 어서 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는 마치 조용한 시골의 사제처럼 그윽히 바라볼 따름이다.

사실 그의 이 바라봄이야말로 그의 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시에서 그득하였던 프랑스 상징주의의 그늘을 많이 벗어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말의 순수한 힘을 믿고 있는(혹은 믿으려 하는) 상징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가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저녁해에 뺨 부비는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잠시 빈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 <저녁빛>에서

차가운 돌 속에
박혀 있는 물고기뼈
너는 어디를 향해 헤엄쳐가려 하느냐

메마른 빛이 돌을 부수고
돌 속에 갇힌 네 뼈마디에 전류처럼 흐를 때
갈기갈기 찢겨 지상을 헤매고 있을
어느 바람이 네 지느러미를 되돌려주랴

은가루 날리는 어둠 속을
날아오르는 자
너 위대한 물고기여
- <달> 전문

이렇듯 그의 아름다운 언어 속에 들어 있는 세계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이전의 시집들인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나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비해 <타오르는 책>은 좀더 명확한 시어와 구체적인 소재들을 많이 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의 시편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을 노래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보이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싶어하고, 또한 그것이 삶이라는 것도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