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더글러스 W. 모크 지음, 정성묵 옮김, 최재천 감수 / 산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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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갓 태어나면 첫 아이는 동생을 때리거나 소위 갈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침대에서 밀어 버리거나, 얼굴이나 손을 꼬집거나, 나 XX이 미워 라고 가족 앞에서 울부짖는 등등. 평범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형제애는, 형제애 그것이 자녀들과 자신들의 생존에도 유리함을 의식-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부모의 계도와 처벌에 의하여 차츰 형성되며, 시간이 지나며 가정 차원을 벗어난 사회화의 과정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친족살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숱한 갈등의 사례들. 또한 많은 친족살인의 사례들. 왕실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네팔의 사건. 형제 지간인 모모 기업과 모모 기업 오너들의 원수 관계. 제사와 부모 봉양과 유산 분할 문제로 가족이 분열될 때에 사람들은 흔히 돈이 뭔지, 사는게 뭔지, 혈연이 뭔지 라는 탄식을 하지만, 그 반어적인 탄식은 오히려 액면 그대로 진지한 질문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돈과 기타 등등의 요소로 인하여 그리 쉽게 깨어지는 '육친의 정' 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회생물학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좋다) 분야의 책들은 대체로 인간에 대해선 조심스럽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사회적 합의와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생물학 자체의 위상과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연구자에게 작용하는 심리적 금기와 기피성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 하게 되는 신중함을 나 역시 학인의 미덕으로 평가하긴 하지만.. 가끔은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발적인 문제제기자가 나타났으면 하는 이중적인 바램도 있다. 하긴 천하의 윌슨도 공진화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마당에.. 감히 누가 '인간' 에 대한 '올바른 해석' 을 자신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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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 (적색)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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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칼의 노래에 보면 사살된 젊은 일본 무장의 칼을 이순신이 흝어 보는 대목이 있다. 칼 한자루 걸머지고 주유천하.. 내 인생에 두려울 게 없다 씨바..  대략 이런 투의 글이 칼에 적혀 있는 걸 보고 이순신이 혀를 차는 대목. 베가 본드를 읽으며 문득 생각이 나더라.  

다케히코의 이 만화는 '남자의 남자 되어가기' 란 점에서 슬램덩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지만, 주인공의 손에 쥔 것이 농구공이 아니라 칼이라는 점에서 한국-인 독자에겐 좀 묘한 아우라를 가진다. '윤리를 따지지 않는 미학의 일본인 vs 보편적 윤리성을 따지는 한국인' 구도의 또다른 재현? 말해놓고도 진부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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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 하룻밤의 지식여행 4
딜런 에반스 지음, 이충호 옮김, 오스카 저레이트 그림 / 김영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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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의 역할과 강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입문서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최근 수십년 간의 동향이 어때 왔는지를 아주 간략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도 능력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도 능력이며, 더 나아가 그것들을 한정된 지면에서 어떻게 배열하고 조직하느냐의 문제도 능력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능력들을 두루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후반부에서 사회생물학의 정치적 함의를 거론하며 책을 마치는 것도 상당히 인상 깊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진화론을 곧 결정론으로 많이들 오해하고 있는 한국의 이념 지형에서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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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론 교실 - 세상에서 가장 인기없는 강의
노야 시게키 지음, 김석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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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극한과 집합론을 소개하고 있는 다른 대중서들처럼 이 책도 제논의 법칙부터 시작하여, 피타고라스, 칸토어, 러셀, 힐베르트, 괴델에까지 이르는 일반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식을 자제한) 간결한 서술이 책을 평균 이상의 입문서로 만든다. A5 판형, 200여쪽 안팎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수리-철학적 논쟁과 논란의 핵심을 어렵지 않게 전달하고 있다. 소설의 형식을 빌어와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독자에게 있을 수 있는 수학 컴플렉스의 방해를 최대한 극복하고자 한 저자의 고심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근대 집합론에 대한, 혹은 그를 아무런 통찰 없이 피상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일본 수학교육계에 대한 유쾌한 교수의 비아냥도 상당히 즐거웠고, 어차피 10대 학생들의 '수학적 세계관과 수학적 상상력' 을 조져 놓고 있기론 마찬가지인 한국에서도 차라리 대학 1학년 정도에서 철학-논리학-수학을 통합한 필수 교양 과목을 8학점 정도로 개설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긴 '수학' 을 고등학교 때 빡세게 배워서 본고사, 학력고사 세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계산력을 키워와야 하는 것 이상으론 생각치 않는 대학과 교수들이 무수한 판에.. 언감생심. 

p.s 재생지로 만든 것에 별 하나를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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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베트남 전쟁 - 미국은 어떻게 베트남에서 패배했는가
조너선 닐 지음, 정병선 옮김 / 책갈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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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격전장이 한국과 월남이었다는 사실은 냉전의 성격과 더불어 미국의 아시아-세계 전략에 대한 본질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중국과의 전면전을 피하며 그 근접 지대에서 막강한 화력과 각종 신무기와 다양한 전술을 장기간에 걸쳐 가동해 본 것 (중국고립이라는 전략상의 큰 줄거리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중국 지도부의 안보 공포를 유발시켜 (모택동 개인의 불안은 특히 유명하다) 소모적인 서부 방어선 구축에 나서도록 유도했고, 대만과 한국, 일본 등이 그참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촘스키의 지적대로 월남전은 5,60년대 거세기 불기 시작한 3세계 민족주의 열풍과 특히 아시아에서의 반미친중적 민족주의 정권들의 등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쇼케이스였고, 그런 맥락에서 무제한적인 제한전쟁이라는 월남전의 특수성이 발생하게 된다. 무엇보다 보여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전쟁. 십수년 먼저 전쟁을 치른 한국-인으로선 공감이 될 수도, 안도가 들 수도,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군대로 출병한 것에 죄책감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 해당 안 될 수도 있다).

월남은 승자의 타이틀을 얻었지만, 고엽제와 네이팜탄 세례는 그런 승리가 아주 값비싼 것이란, 심지언 결코 시도해선 안 될 나쁜 선택이란 교훈을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게 남겼다. 월남인들 역시 승리를 논하기 이전에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했고, 전쟁에서의 승리로 그 고통을 쉽게 치유할 수 없었던 과거와 현실을 이후의 문학 등이 잘 보여 주고 있다 - 이 대목은 사실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라는 서술체로 써야 한다, 아직까지 직접 읽어 본 것이 없기에. 암튼 월남전의 참혹함이 월남전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키워드라 이해하곤 있었으나, 월남전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지 못한 이에게 지적 균형을 맞춰줄만한 책이다. 월남 케이스를 저항적 민족주의의 전범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한 SWP 당원인 저자의 시각도 흥미롭다, 북한 문제의 해법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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