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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 책은 누구네 책상에 있는 것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한국 학벌이 미국 학벌로 바뀌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기존의 학습 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책. 단지 몇가지 생각되는 부분만 간략히 언급해보자.

진정한 경쟁은 타인과 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과 공부 역시 그러하다. 시험 같은 틀 안에서의 경쟁도 어느 시점과 수준에선 반드시 끝나게 마련이고, 주체성과 창의성이 갈수록 더 요구된다. 주체성과 창의성이란 단어를 좀더 구어답게 푼다면, 내가 이해하는 세계가 무엇인가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정도라 해두자. 암튼 어떤 학교에 들어갔다는 자체가 화제가 되고, 그전의 과정을 책으로 내는 발상부터가 진부하고 한국-적이다. 책이라면 당사자인 두 자녀가 나중에 내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뭔가 말할 것이 생긴, 그런 삶을 살아온 수십년 이후에.

홍정욱 류의 이런 책들은 사실 해외토픽 감이다. 하버드 들어간 개인사와 신변잡기를 구구절절 적어 놓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한국의 포스트 식민을 논하는 사례로 저 얘기를 하면 국적에 관계 없이 청자들은 대체로 의아해하던 기억이 난다. 

뜬금없는 총평. 부모는 자기 인생 살고 자녀도 자기 인생 살자.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개인들이 모여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시되는 사회를 이룰 때, 인재도 생기고 경쟁력도 생기고 선진조국도 앞당겨지지 않을까. 자녀 교육에 올인한 희생적인 (또한 이기적인) 부모 밑에선 그 희생의 본전을 생각하는 체제의 모범생만이 주로 나올 것.. 부모의 헌신과 명문 학교를 위한 치열한 공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만이 되어선 부족하다는 부연을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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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써라 - 글쓰기.읽기.혁명
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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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쓴 리뷰에 글이 어렵다는 리플이 달렸다.  아차 싶었다.  리뷰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난무하는 한자어들.  죽죽 늘어지는 만연체.  글은 의사 전달을 위한 것이지만, 모든 이들에게 다 이해가 될 순 없다.  그러나 좀 더 쉽고 간명하게 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 늘 고민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순히 글의 외양만이 아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쉽고도 분명하게 쓸 수 있다.     

리뷰를 개인사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책이 다루고 있는 글의 중요한 본질과 관련해서이다.  교육이 계급을 형성하는 수단이 되고, 읽기와 쓰기가 입시를 위하여 강조되는 시대다.  그러나 모든 지식이 결국엔 인간과 세계를 다루고 있고, 모든 글 역시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면!  입시 도구 같은 것이 될지언정, 인간의 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하여 더욱 확장된다.  인간으로서의 삶에도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물론 활자 외에도 음악과 그림과 음주가무와 고스톱과 기타 많은 수단들이 있지만, 보편적인 것은 역시 글이다. 

결국 글은 인간의 것이고, 인간을 위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인간의 것이고, 살아있는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다.  죽은 자의 글이 산 자에게 읽히고, 산 자의 글이 다른 산 자에게 읽혀져도, 죽은 자의 글이 죽은 자에게 읽혀지진 않는다.  인류가 지상에 존재하는 그 순간까지, 인간의 언어 역시 시퍼렇게 살아있을 것이다.

젠슨의 책엔 '산 자를 죽은 자처럼 취급하는 죽은 언어' 에 대한 분노와 야유가 곳곳에 서려 있다.  근대-교육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충분히 공감되는 메시지.  '글쓰기' 는 원래 주인인 '살아있는 모든 인간' 에게 돌아가야 한다.  글이 가졌던 치유와 반성과 소통과 이해라는 본래의 기능과 목적 역시 회복되어야 한다.  글은 결코 인간을 억압하는 수단이 아니다.  본디 주인인 인간에게 오히려 외면당하고 오해를 사는 대상일 수도 없고, 그 내용과 형식을 통제하는 권위 또한 있을 수 없다.  살아있다면 오직 쓰고 읽고 말하고 들으라.  그 모든 표현과 소통을 통하여 더욱 '자기 자신' 이 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더욱 넓은 세계를 경험하라.  책이 던지고 있는 함의는 단순한 글쓰기의 차원을 넘어서지만,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온전한 쓰기와 읽기를 회복하는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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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태평양전쟁 살림지식총서 203
이동훈 지음 / 살림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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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육군의 맹동이 제어되었다면 전쟁의 결과가 어느 정도 달라졌을까. 일본의 방어가 좀 더 효율적으로 전개되었겠고 중반 이후의 급격한 전세 하락 같은 것도 달라졌겠지만, 아시아에서의 세력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의도를 가지고 있던 미국과의 장기전은 피할 수 없었을 듯. 내외적 갈등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청과 러시아, 후발산업화 국가를 상대로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던 영국과 프랑스 등과는 근본적으로 조건과 역량이 다른 미국이었으니.. 당시 일본 해군과 외무부가 주장한대로 적정선에서 진격을 멈추고 굳히기에 들어갔다 한들, 미국의 물량을 끝내 당해내진 못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의 전쟁 기술과 근성이 싱가폴 공략 같은 단기전에선 위력을 발휘했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현대전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준은 아니었던 것.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생각이 난다. 주제와 상관은 없지만. 하긴 태평양전쟁에 관한 일본 영화는 저거 하나 밖에 본게 없으니, 역시 전쟁에 대한 발언권은 옹호든 비판이든간에 승자 쪽에서 주로 나오는 것인가 (아님 우리가 그런 것을 주로 제공받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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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 '수학사랑' 박영훈 선생의 수학사 특강
박영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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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기호와 공식 자체가 수학을 어렵게 만들진 않는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범인의 평균적인 지적 능력으로도 고도의 추상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상적인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수만년 간의 인류 지성사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는다. 인식의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역사적, 지성사적 맥락이 배제된 가운데 수학이 가르쳐지는데 있다. 서세동점 시기의 중국인들은 mathematcis를 數學 이라 번역했고,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존의 '셈을 위한 기술' 이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단지 그 버젼이 서양 것이었을 뿐. 물론 '수학' 이 '셈' 에 관한 공부라는 것이 아주 틀린 발상은 아니고, 당대의 동아시아가 나름대로 노력한 근대 이해의 산물을 평가절하할 생각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학문은 단순히 '계산에 관한 기술' 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까지 포함한 자연세계를 인식하고 재구성하려는 총체적인 사고와 표현의 틀이다. 관(觀) 과 論(론) 을 술(術) 로 대한 것부터가 오류였다는 지적이다.   

이후의 역사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도구로서 수학의 실용성이 줄곧 강조되는 가운데, 중등 교육과 경제적 측면에서 나름의 성과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의 성장 모델이 파산 선고를 받고, 교육이 지금부터라도 대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은 상황에서도 정작 우리의 학문적 기초와 토양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물세계를 언어와 기호를 동원하여 추상적으로 조직화하는 사고의 성숙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에게 수학 정석 같은걸 들려주며 밤늦도록 문제풀이를 시키는 풍토에선 결국 그 수준의 인간형만이 길러질 따름이다. '창의성' 이란 것이 당위로는 숱하게 거론되지만 실제론 거의 시도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 사회 자체가 이렇듯 창의성은 커녕 '사고와 철학의 부재' 에 시달리고 있는 속성과 관련이 깊다. '생각' 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빈곤' 이 악순환 되는 것이다. 수학 교양서 리뷰치곤 좀 심각한 감이 있지만, 지식이란 결국 집단 전체의 유기적인 사고라는 점에서! 수학이 왜 오해받고 있느냐는 문제 역시, 한국 사회가 지식과 학문이란 것을 평소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라는 더 큰 주제로 환원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수학 교양서들이 좀 더 널리 읽혔으면 한다. 이런 책이 개개의 개념과 발상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케 하고,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고민하게 만든다면, 그런 독서는 문제집 수십권 푼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양은 실용까지 아우르는 법이다.     

p.s 안재구의 수학문화사는 아마 저자의 고령 때문인지 로마제국까지 다룬 1권에 그치고 말았다. 고중숙의 책은 상세한 역사적 배경 제시와 풍부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역작이지만, 연대 순의 수학사라 보기엔 좀 무리가 있고 고가의 압박도 있다. 아무튼  책이 현대 수학까지 계속 이어지길 희망하며, 언젠가 성인 독자를 위한 정통 수학사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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