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 '수학사랑' 박영훈 선생의 수학사 특강
박영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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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기호와 공식 자체가 수학을 어렵게 만들진 않는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범인의 평균적인 지적 능력으로도 고도의 추상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상적인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최근 수만년 간의 인류 지성사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는다. 인식의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역사적, 지성사적 맥락이 배제된 가운데 수학이 가르쳐지는데 있다. 서세동점 시기의 중국인들은 mathematcis를 數學 이라 번역했고,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존의 '셈을 위한 기술' 이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단지 그 버젼이 서양 것이었을 뿐. 물론 '수학' 이 '셈' 에 관한 공부라는 것이 아주 틀린 발상은 아니고, 당대의 동아시아가 나름대로 노력한 근대 이해의 산물을 평가절하할 생각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학문은 단순히 '계산에 관한 기술' 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까지 포함한 자연세계를 인식하고 재구성하려는 총체적인 사고와 표현의 틀이다. 관(觀) 과 論(론) 을 술(術) 로 대한 것부터가 오류였다는 지적이다.   

이후의 역사에서 부국강병을 위한 도구로서 수학의 실용성이 줄곧 강조되는 가운데, 중등 교육과 경제적 측면에서 나름의 성과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존의 성장 모델이 파산 선고를 받고, 교육이 지금부터라도 대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은 상황에서도 정작 우리의 학문적 기초와 토양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물세계를 언어와 기호를 동원하여 추상적으로 조직화하는 사고의 성숙이 아니라, 초등학생들에게 수학 정석 같은걸 들려주며 밤늦도록 문제풀이를 시키는 풍토에선 결국 그 수준의 인간형만이 길러질 따름이다. '창의성' 이란 것이 당위로는 숱하게 거론되지만 실제론 거의 시도되지 않는 이유는, 한국 사회 자체가 이렇듯 창의성은 커녕 '사고와 철학의 부재' 에 시달리고 있는 속성과 관련이 깊다. '생각' 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빈곤' 이 악순환 되는 것이다. 수학 교양서 리뷰치곤 좀 심각한 감이 있지만, 지식이란 결국 집단 전체의 유기적인 사고라는 점에서! 수학이 왜 오해받고 있느냐는 문제 역시, 한국 사회가 지식과 학문이란 것을 평소 어떻게 생각해 왔는가 라는 더 큰 주제로 환원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수학 교양서들이 좀 더 널리 읽혔으면 한다. 이런 책이 개개의 개념과 발상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케 하고,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고민하게 만든다면, 그런 독서는 문제집 수십권 푼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양은 실용까지 아우르는 법이다.     

p.s 안재구의 수학문화사는 아마 저자의 고령 때문인지 로마제국까지 다룬 1권에 그치고 말았다. 고중숙의 책은 상세한 역사적 배경 제시와 풍부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역작이지만, 연대 순의 수학사라 보기엔 좀 무리가 있고 고가의 압박도 있다. 아무튼  책이 현대 수학까지 계속 이어지길 희망하며, 언젠가 성인 독자를 위한 정통 수학사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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