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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 간디학교 교장 양희규의 '행복한 작은 학교' 이야기
양희규 지음 / 가야넷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지난 토요일(2012. 5. 12.) 청소년 인문학 읽기 동아리 아이들과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1989)를 봤다. 고등학교 시절 봤던 이 영화를 무려 20년이 지나서 다시 본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2012년 지금의 교육 현실이 그때와 다를 바 없어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덩달아 눈을 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라스트 신이다. 닐 페리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나는 키팅을 향해 아이들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던 키팅의 수업을 기억한 듯 책상 위로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마음 속에선 영사기가 계속 돌아간다. 아이들은 아련해지는 ‘카르페 디엠’의 메아리를 가슴에 묻은 채 제자리에 앉아 교장의 답답한 시(詩)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키팅의 수업은 학교의 전통(?)을 넘지 못했다.
좋은 선생은 있어도 좋은 학교는 없는 것일까? 학교에서 배움의 즐거움과 삶의 행복을 경험할 수 없다면 그곳을 학교라 할 수 있을까? 우리 교육이 꿈, 희망, 아름다움, 자기 발견 같은 인생의 중요한 모든 가치를 희생시켜 겨우 얻는 것은 무엇인가? 겨우 극소수의 물질적 성공-대학 입시, 좋은 직장, 결국 돈-아닌가? 우리는 학교를 떠나 비참한 현실과 황폐한 일상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질문하기 시작한다. 학교에 대하여, 배움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꿈에 대하여, 성공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배움은 의문과 질문에서 시작된다. 학교는 학생이 질문하고 선생이 답하며 함께 배우는 곳이다. 질문을 잊는 순간 인간이 가진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침에 자욱했던 안개가 햇살을 만난양 사라져버린다. 맞다. 과거에도 지금도 소위 학교라 불리는 곳은 끊임없이 듣는 곳이지 질문하는 곳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학교, 변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학교와 교육에 대한 책을 뒤적거리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선구자로 불리는 양희규 간디학교 설립자의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을 찾아냈다. 양희규는 서문에서 이 책은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교육 이야기,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에 관한 이야기, 진정한 행복을 탐구해 온 삶의 기록’이라고 했다. 외고나 특목고, 하버드나 스탠포드 같은 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의 공부법, 그런 아이들을 길러낸 부모나 선생들의 교육법이 끝없이 쏟아지는 대한민국에 간디학교 이야기는 퍽 신선했다.
저자는 자기의 학창시절의 일화들을 하나 하나 소개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과학시간에 ‘집 앞 담벼락 햇살이 왜 뒷동산의 햇살보다 따뜻한지’ 질문했다가 무시당하는 장면,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에 시(詩)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말했다가 면박을 당하고 다음 수업에 참고서에 있는대로 대답해서 칭찬받는 장면, 고등학교 3학년 화학시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원자의 모양을 선생님은 어떻게 아는지’ 묻는 장면. 그 어떤 장면에서도 제대로된 답을 얻지 못한 저자였지만 대학, 대학원, 유학시절 내내 삶의 행복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질문 끝에 스스로 답한 것이 바로 간디학교다.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오늘부터,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 진정으로 자기의 전 생애를 걸고 몰두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몇 번의 시도만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찾을 때까지 발견할 때까지 노력을 계속 해야 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좀 더 명확하게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한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50p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정교한 이론을 만들거나 심지어 어떤 학파를 세운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관대하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어떤 문제들을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 중에서
1997년 경남 산청에서 시작된 간디학교의 교육철학은 저자가 그루터기 선교회에서 배운 교육원리와 간디의 삶에서 건진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간의 사랑, 가능한한 무한히 주어지는 자유, 스스로 먹고 입을 것을 버는 자립과 육체 노동의 기쁨, 진리를 따르는 단순한 삶, 공동체의 행복 같은 것들이다. 이름하여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을 추구한다. 간디학교의 교육철학에는 아이들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새겨져 있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자유를 되돌려 주기만 하면 그 속에서 놀면서 행복한 삶을 배울 것이라는 믿음이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좁은 교실, 작은 책걸상에 온종일 앉아서 10년이 넘도록 수업을 듣는다. 신이 허락한 자연과 놀이를 빼앗긴 채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어린 시절을 그렇게 지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사랑할 수 있는지, 나에게 어떤 종류의 삶이 맞는지 생각해볼 기회도 잃어버린다. 내가 경험한 불행한 학교 생활 속으로 내 아이의 등을 떠밀 수는 없다. 성공하면 행복한 삶이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학교를 다닐 때 한번도 학교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건만 아이의 학교와 공부에 대해, 삶과 행복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사실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청소년 시절의 행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래를 위해 희생한 청소년기의 행복이 언젠가는 보상되리라고 믿는가? 그런 생각은 인생의 중요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년기의 행복, 청소년기의 행복, 성인의 행복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며 결코 과거의 불행을 현재의 행복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꿈꾸는 간디학교 아이들> (20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