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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선구자(先驅者) - 진정한 복수에 관한 소고(小考)
모리구치 유코 선생님
선생님의 <고백>, 잘 읽었습니다. 특히 살인자를 향해 타이르듯 담담하게 ‘진정한 복수’를 말씀하시던 마지막 장면에선 제 심장마저 서늘해지더군요. 당신은 복수의 진수를 보여주신겁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반면에 “과연 모리구치 유코 선생이 진정한 복수를 한 걸까?” 하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고 하더군요. 유코 선생님의 복수는 반드시 이어지는 복수를 부를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A를 용서했다면 복수의 씨앗은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죽어버렸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복수란 어떤 대상에 압박을 가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복수 자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말하자면 용서를 통해 복수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판결문을 읽는 판사처럼 한 치의 떨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흔들린 건 저였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의 말을 곱씹을수록 선생님께서 이루신 진정한 복수에 대한 저의 확신은 안개 저 편의 불빛처럼 희미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진정한 복수’라고 말씀하신건 복수에도 레벨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저도 동의합니다. 몇 해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재벌그룹의 회장이 떠오릅니다. 술집에서 맞고 들어온 아들의 복수랍시고 조폭들을 동원해 폭력을 휘둘렀던 사람 말입니다. 이런 논할 가치도 없는 삼류 복수와 선생님의 그것을 동급으로 놓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 저는 차근차근 선생님께서 완성하신 복수의 과정을 되짚어 보려합니다. 복수의 동기, 태도, 방법, 결과에 이르기까지 면밀히 살필 생각입니다. 용서가 진정한 복수라고 외치는 저 무리들의 단호함에 맞서 선생님의 복수가 왜 진정한 복수인지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먼저 복수의 동기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인간은 애정을 품고 있는 관계가 훼손되거나 상실되었을 때 복수를 결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A와 B에게 가혹하리만큼 엄청난 복수를 하셨습니다. 딸 마나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복수의 강도(强度)는 애정의 크기에 비례하는 법이니까요. 저도 아이를 양육하는 아버지로서 세상의 어떤 사랑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딸아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으니 유코 선생님 당신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더군다나 담임을 맡고 있었던 제자들이 딸아이를 죽인 범인인 것을 알게 됐을 때는 하늘의 해와 달이 사라져버린 것 같았겠지요. 누가 감히 용서라는 말을 지껄일 수 있단 말입니까?
다음은 복수를 하는 선생님의 태도입니다. 경찰은 마나미의 죽음을 사고라고 판단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 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수였다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 있거나 맹렬한 분노를 감당치 못해 범인을 죽여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감정에 붙들리게 되면 죽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섬뜩할 정도의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셨습니다. 거기에 용서가 끼어들 틈은 없었습니다. 덕분에 마나미의 죽음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선생님의 복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감정은 드러낼수록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는 이상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복수의 방법입니다. 복수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정의의 실현이라는 공동체적 가치에 사로잡혀 경찰에 신고했다면 ‘진정한 복수’는 물건너 갔겠지요. 내 손을 떠난 복수는 이미 복수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용서에 가깝지요.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A와 B를 법대로 심판하는 대신 은밀하고 치밀한 개인적 제재를 통해 벌함으로써 진정한 복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수의 결과를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복수의 끝이 복수 대상의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삼류 복수지요. 복수 대상이 사라진다면 복수는 실패한 겁니다. 갑작스럽게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면 복수하는 자는 심각한 상실감을 느끼기 마련이지요. 용서는 복수 대상을 부재케하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성공적인 복수는 복수하는 자의 동기를 복수 대상에게 그대로 전수해주는 것입니다. 유코 선생님, 당신은 A가 가장 신봉하던 대상을 파괴함으로써 그의 가슴에 고통을 또렷이 각인시켰으며 A가 삶의 나머지 시간을 당신에게 복수의 칼을 가느라 허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진정한 복수’의 선구자십니다.
그런데 유코 선생님, 문득 떠오르는군요.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수는 용서라고 외치는 저 무리들의 주장이 옳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의 복수 과정을 다 살펴본 지금, 저는 왜 이렇게 혼란스러울까요? 정말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