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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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이름이 있다. 나도 이름이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선친께선 젊은 날 정치에 뜻을 두셨지만 이루시지 못했다. 막내의 이름에 '멀리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으셨다.

내 이름에는 선친의 안타까움과 소망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이름을 함부로 짓지 않는다. 이름은 삶을 만들어가는 단서, 정체성의 근원 설화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명소를 찾기도 하고 사전을 들고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힘겹고 어려운 지난 삶이 혹 이름때문은 아닌지 의심하다가 개명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름에는 '다른 사람과의 구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라일라'는 <황금 물고기>(르 클레지오)의 주인공이다. 라일라는 대여섯 살에 유괴되어 밤에 랄라 아스마에게 팔려온다. 랄라 아스마는 라일라가 밤에 왔기 때문에 '밤'이라는 뜻의 '라일라'라고 이름 지어준다. '라일라'라는 이름은 라일라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라일라의 진짜 이름은 희미하고 흐릿한 몇 개의 기억으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어둠 속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라일라는 언젠가 누군가가 진짜 이름을 말해 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라면 삶의 어느 지점에서 분명히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잠에서 깨어난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머리 속이 하얗게 된다. 누구도 답해 주지 않는다.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라일라와 다르지 않다. 처음과 끝을 모르는 시원의 어딘가에서 갑자기 유괴되어 지구라는 별로 팔려 온 것은 아닐까? 떠나야 한다. 두려움은 진짜 이름을 찾는 여정 속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라일라는 감방의 죄수가 탈옥하듯 떠난다. 그녀의 유년은 랄라 아스마의 저택에 감금되어 있었다.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폭언과 학대에서 공포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그 공포는 진짜 이름을 찾을 때 자취를 감출 것이다. 진짜 이름을 찾는 날이 자유의 날이 될 것이다. 라일라의 여정에 놓여진 것들은 그녀를 노리는 수많은 그물과 올가미들 뿐이다. 인신매매었다가 도망친 흑인 여자 아이 앞에 놓여 있는 삶은 고단하고 비루한 현실이다.

 

 10대의 라일라는 긴 여행을 한다. 아프리카  힐랄 부족에서 모르코로 유괴된 후 에스파냐,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까지 이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떠난다. 만남과 떠남을 반복하는 그녀의 여정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가두려는 사람들로부터의 도피라고 해야겠다. 아니 두려움으로부터의 탈주라고 해야겠다. 아니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한 정처없는 방황이라고 해야겠다. 아니 자유에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던 대장정이라고 해야 옳겠다. 

 

 라일라가 만난 사람들은 직업, 신분, 인종, 국적, 나이, 성(性), 이름이 제 각각이다. 그들 중에는 라일라를 가두고 지배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또 지배 문명에서는 소외되었던 아프리카인들, 집시들, 아이티인들, 인디언들도 있다. 라일라의 여정에 꼭 필요한 것을 베푸는 사람들은 문명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들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알게된 세네갈 출신의 엘 하즈 할아버지는 죽은 후 라일라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남긴다. 엘 하즈는 병으로 죽은 손녀 마리마 마포바의 이름으로 된 여권을 준다. 엘 하즈는 라일라에게 '이름과 여권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

 

 또한 프랑스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었던 엘 하즈의 손자, 하킴은 라일라를 아프리카 박물관에 데려가 아프리카의 역사를 들려주고 니체와 흄과 로크와 라 보에티의 글을 읽게 하고 마침내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을 건네준다.- 알제리 혁명의 대명사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은 민족과 국가의 탈식민주의를 넘어 개인의 해방인 '존재의 탈식민지'까지 분석해 낸 책이다 - 라일라는 역사와 철학, 특히 프란츠 파농 위에서 그녀의 새 이름을 짓는다. 라일라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라일라는 자신의 땅, 힐랄 부족의 땅으로 되돌아 왔지만 예전의 라일라가 아니다. 숱한 떠남과 만남 속에서 라일라는 마침내 '다른 이름,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된다. 성의없이, 함부로 지어진 캄캄하고 어두운 이름 '라일라'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빛난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 읽었던 책, 듣고 연주했던 음악이 자유라는 물고기의 반짝이는 비늘이 된 것이다. 이름이 삶을 만들기도 하지만 라일라처럼 삶이 만들어 내는 이름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인류의 근원에 대한 의문도 결국 '이름 찾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무수한 개인이 했을 이 질문. 그럼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이름은 왜 이토록 빈약할까? 모두 다른 이름을 가졌는데도 같은 의미로 들리는 것은 또 왜일까? 라일라의 이름 찾기 여정을 통해 우리는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름들을 만난다. 식민의 경험을 가진 서구가 오만하게 내버린 소수 피지배 민족들의 이름을 되찾을 때 인류라는 이름의 의미가 더욱 다양해지고 풍성해져 하나의 완전한 이름으로 만들어 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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