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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제국의 발견 -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첫 장에는 수 초동안 지구상에는 7억 마리의 개미가 태어나고 5억 마리의 개미가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게 많은 개미가 태어나고 죽어도 나는 개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공원의 풀 섶에서, 길거리의 보도블록에서, 심지어 집 안에서 수없이 개미와 마주쳤지만 마주친 그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개미가 구축한 땅 속 세계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편의 영화때문이었다. 1998년 드림웍스社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개미(Antz)>를 보면 여왕개미, 수개미, 일개미 외에도 전투개미, 유모개미 같이 분화된 직군이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개체군끼리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고 진딧물을 사육해 단물을 얻어 마시는 장면도 나온다. 무척 흥미로웠지만 그땐 그저 어느 정도의 과학적 사실 위에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상상력이 덧입혀진 것이라고 여겼다.
최근에 읽은 최재천의 <개미제국의 발견>은 그러려니 생각했던 개미 사회에 대한 나의 흐릿한 지식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바꾸어 놓았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을 그들(과학자)만의 언어 속에 가두지 않고 친절한 설명과 수많은 사진을 곁들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나아가 개미사회에서 관찰한 사실과 현상을 인간 사회의 경제, 문화, 정치와 대비시켜 과학적 지식에서 삶의 지혜를 들여다 본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며 '실화보다 재미있는 소설은 없다'고 했는데 과연 <개미제국의 발견>은 어떤 소설이나 다큐멘터리보다 재미있다. 1984년 이후 개미를 연구해온 저자의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3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개미사회의 경제, 문화, 정치가 그것이다. 개미사회의 경제를 펼치면 개미들의 분업제도가 인간이 이룩한 고도의 공장 경영을 연상시킨다. 거대한 버섯농장을 경영하는 잎꾼개미나 깍지벌레를 사육하는 레몬개미 이야기를 읽을때는 인간을 뛰어넘는 농축산의 역사에 입이 떡 벌어진다. 개미사회의 문화로 넘어가면 더욱 놀랍다. 개미는 페르몬을 통해 지능적 의사소통을 하며 해와 별을 방향지표로 삼아 집으로 돌아온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사는 개미는 방향을 틀 때마다 각도를 측정하고 계산해 두었다가 먹이를 구하면 일직선으로 집으로 달려간다니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개미사회의 정치는 어떨까? 개미사회는 기본적으로 여왕개미에 충성하는 일개미들로 똘똘 뭉친 전체주의적 왕국이다. 하지만 여왕개미의 여왕물질이 약화되면 일개미들이 알을 낳기도 하고 군락의 변방이나 굴 속 어느 한 방의 입구를 막고 자기들끼리 알을 낳기도 한다. 여왕개미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사회적 갈등'이 존재한다. 또 신생국가를 건설하는 여왕개미들이 서로 협동해서 제국의 초기에는 공생하다가 제국의 기초가 다져진 이후에는 하나의 여왕자리를 놓고 피비릿내나는 암투를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 붉은색의 아마존개미는 다른 종의 개미굴에 쳐들어가 번데기를 납치해 노예를 삼기까지 한다고 하니 <개미제국의 발견>을 읽은 후에 다시 보는 개미는 도저히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저자 최재천 교수는 요즘 '통섭'의 학자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저자의 과학대중서 데뷔작으로 1999년 출간됐고, 이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호모 심비우스>,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등 저서, 번역서, 편저, 공저를 합해 50여권의 책을 냈다. 뿐만 아니라 EBS 특강, 초청 강연,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의 지명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개미제국의 발견>이었다. 그의 책, 특강, 강연, 인터뷰에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개미를 주로 연구하는 학자이니 개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면서 다른 학문 분야와 벽을 허물고 섞이는 '통섭'을 계속한 결과 그는 개미와 동물의 행태연구를 넘어 인간의 경제, 환경, 정치, 교육, 복지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마치 한 마리의 여왕개미가 오랜 세월 이룩한 개미제국을 연상케 한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개미가 구축한 놀라운 제국을 속속들이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순수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성찰하게 하며 결국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어라(잠언 6장 6절)" <개미제국의 발견>을 읽고 나면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개미에게 가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부지런함 말고도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